삼성그룹은 계열사 노조를 '수직 파괴'했나…본격 심리 돌입

삼성-경찰 '불법 공조'도 주목

(삼성전자 노컷뉴스 자료사진)

삼성이 그룹차원에서 계열사 노조 파괴를 지휘하고 이를 위해 경찰과 공조했는지 여부가 법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지난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혐의자들이 기소된 지 9개월, 2013년 이른바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드러난 지 6년 만이다.

현재 삼성그룹의 노조 와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법에만 5개 사건이 올라와 있다. 모두 지난해 하반기 이후부터 올 1월까지 재판에 넘겨졌지만 아직 쟁점 사항에 대한 본격적인 심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오는 12일부터 형사23부(유영근 부장판사)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의 검찰 측 공소사실이 차례로 다뤄질 예정이다. 앞서 공판준비기일만 11번, 공판기일도 5번이나 열렸지만 검찰의 주요 공소사실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피의자만 32명으로 검토 사항이 방대한 측면도 있지만, 검찰 측 증거 채택 여부를 두고 피고인들이 강경하게 맞서면서 본안 심리가 뒤로 밀렸다. 피고인 측은 압수수색 중 수집한 증거는 효력이 없다고 주장해 왔지만 재판부는 긴 논의 끝에 우선 증거를 채택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법원 관계자는 "지난해 6월 1일 최평석 삼성전자서비스 전무가 처음 기소된 후 이상훈 삼성전자 의장과 목장균 전 삼성전자 노무담당 전무 등 그룹 수뇌부는 9월 말에야 추가로 기소됐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지연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일 공판도 법원 정기인사로 법관 3명이 모두 바뀌면서 갱신절차를 밟느라 본안에 대해 제대로 다투지 못한 채 예정된 시간이 끝나버렸다.


검찰 측은 12일 공판기일에 삼성그룹이 비노조 경영을 고수하기 위해 매년 관련 계획을 수립해 왔고 이에 따라 계열사 노조 파괴 정책을 지휘했다는 점을 주로 서증할 예정이다.

특히 공소사실 중 비슷한 쟁점을 묶어 범죄사실을 지적하는 통상적인 방법 대신 증거목록 순번대로 하나하나 짚어나간다는 계획이다. 방대한 증거들이 여러 피고인의 범죄 사실에 중첩돼 쓰이는 만큼 누락되거나 뭉뚱그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형사33부(손동환 부장판사)에서 심리하는 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 피고인 13명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도 곧 열린다.

이 사건에서도 검찰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의 '비노조 경영' 방침 일환으로 계열사에 대한 노조 파괴가 이뤄진 점을 공소장에 명시해 놓았다. 미전실을 총괄한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은 이 사건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모두 개입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삼성전자서비스와 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 공소장에서 공통적으로 '순차 지시'라는 용어를 반복 사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조 탄압을 위해 본사에 설치한 '종합상황실'에 그룹 직원이 파견돼 수시로 노조 대응 상황을 미전실 임원에 보고했고 이에 따라 순차적으로 노조 파괴를 위한 지시와 이행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에버랜드에도 노조 와해를 위한 (비상)상황실이 미전실 승인으로 설치됐다. 강 부사장은 여기에서도 소위 '문제인력'으로 찍힌 조장희 삼성에버랜드 노조 부지회장 등의 직원 동향을 일일이 보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원 개별 탈퇴 유도를 통한 조기 노조 와해 △문제인력 동향 파악과 감축 △단체교섭 지연을 통한 노조 고사시키기 등 매년 미전실이 기획한 '그룹 노사전략'이 그대로 실행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전실 전략이 구체적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삼성의 뒷돈을 받은 경찰과 단체교섭을 지연시킨 한국경영자총협회 직원들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이다.

특히 형사27부(정계선 부장판사)에서 심리 중인 고(故) 염호석 씨 시신 탈취 사건에 개입한 경찰 2명의 수뢰 의혹은 앞선 사건들에서 삼성의 뇌물·횡령 혐의와도 이어져 진행 상황이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배당된 사건은 각 재판부 고유의 판단으로 심리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다만 이번 사안처럼 각 판결이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은 재판부의 성향이나 사건의 중요도 등에 따라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 측은 관련 혐의들이 그룹 경영을 위한 합법적인 정책이자 계열사 관리에 불과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특히 검찰이 압수한 노사전략 문건 등에 직접 개입한 정황이 부족한 고위직들을 공모공동정범으로 기소한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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