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박민 참여미디어연구소장
■ 대담 : 배우 송원
- 가해자 전 극단 대표 최경성씨, 1심 징역 1년 6개월
- 미투 이후 가해자 옹호 집단 더 끈끈해져
- 피해자가 주체적으로 살 수 있도록 격려하는 사회가 멋진 사회!
◆ 송원> 네, 안녕하세요.
◇ 박민> 성평등을 바라보는 시선이 미투 전과 후로 나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송원씨의 삶 또한 미투 전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그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습니까?
◆ 송원> 미투 이전보다 더 잘 지내려고 노력했고요. 실제로 훨씬 더 용감하고 씩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한 여성이 자신의 성폭력을 세상에 드러내는 과정은 매우 힘들었지만, 피해자가 숨어서 지내야 한다는 인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보고요. 언론도 피해자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잘 그려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저는 본업인 연극 현장에서 창작자와 교육자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 박민> 미투 이후 용기 있는 삶을 보내셨다는 소식이 반갑기도 한데요. 우리 사회가 바뀌었느냐 이건 또 따져봐야 할 거 같습니다. 한국 사회. 좁게는 송원씨가 활동하는 문화계, 연극계에 어떤 변화가 느껴지나요?
◆ 송원> 좀 조심스럽기는 한데요. 지역 문화예술계에서는 거의 아무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고 과감히 말하고 싶어요. 왜냐면 가해자를 옹호하는 이익집단들이 더 끈끈하게 뭉쳤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지역 미투에서 대해서 행정과 정치권도 미온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도나 지침이 생겨나야 할 텐데 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부분도 있어요. 여성들을 중심으로 해서 문화예술 연대 모임을 꾸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 박민> 가해자를 옹호하는 집단들이 뭉쳤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 송원> 아직 공론화되지 못한 미투도 있잖아요. 시효가 지났다든지 생계 등 복잡한 이유로 공론화될 수 없는 미투가 있는데요. 이런 경우에는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더욱 압박하는 모습들이 보이죠.
◇ 박민> 그걸 주변에서 직접 목격하셨어요?
◆ 송원> 그럼요. 주변에서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특히 직장을 다니는 등 생계하고 연관되었다면 더 많이 있겠죠.
◇ 박민> 우리 사회가 더 논의해봐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은데 그중 하나가'피해자다움'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도 있습니다. 송원 씨도 알게 모르게 상처가 되고 힘든 점도 많았을 듯합니다.
◆ 송원> 2차 가해라고 하죠. 사실 알면서 하는 분들보다 모르고 하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미투 물결도 처음이었고 저희가 받았던 교육이나 공동체 안에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게 그 원인인 거 같고요. 2차 가해에 대해서 뭘 하라, 하지 말라는 교육보다는 우리 사회가 아픔에 대한 공감 능력이랄까요. 이런 부분이 높아지고 성폭력이 한 사람의 성역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나 위계, 젠더 권력의 문제라는 걸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박민> 의도적으로 가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해를 하는가 하면 모르고 하는 2차 가해가 있다는 건데요. 예를 들면 어떤 사례가 있을까요?
◆ 송원> 저의 경우는 피해자이기 전에 한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피해자가 피해자답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를 자꾸 피해자로 환원해 보는 거죠. 저는 기자회견을 한 당일에도 생계를 위해서 출근하고 업무에 지장 없이 일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게 피해자의 모습일 수 있냐 이렇게 보는 거죠.
◇ 박민> 혹시 가해자인 극단 대표로부터 사과는 받으셨나요?
◆ 송원>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 박민> 우리나라 최초 미투에 나섰던 서지현 검사가 미투 1주년이 되던 날 국회를 찾아 이런 말을 했습니다.'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공동체가 바뀌어야 피해자가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는데요. 이 말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거 같아요.
◆ 송원> 그날 저도 서지현 검사님과 함께 발언했거든요. 검사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울컥하기도 했어요. 피해자를 피해자로만 환원하는 사회는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봐요. 언론에서도 피해자라고 하면 방구석에서 울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그리잖아요. 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피해를 딛고 피해자가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는 사회가 멋진 사회라고 봅니다.
◇ 박민> 앞서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미투들도 있을 거 같아요. 미투가 이어지고 더 나아가 진정한 성평등이 자리 잡기 위해서 어떤 과제가 남았다고 생각하세요?
◆ 송원> 정치나 교육, 행정에서 역할이 있겠지만, 저는 예술가고 창작자니까요. 문화예술가들이 성평등을 위해서 해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생각해봤어요. 콘텐츠 제작자들의 관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만드는 작품에서 인권을 어떻게 다루는지 젠더 감수성을 얼마나 투영해서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박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서'성평등 디딤돌상'을 수상한다면서요. 그 상에 대한 무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끝으로 말씀해주시죠?
◆ 송원> 제가 평소 공감하는 말인데요. 내가 지금 편하다면 누군가 나를 배려해주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있어요. 가정이나 회사나, 학교나, 지금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내가 편하다는 누군가 나를 배려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봤으면 해요. 그런데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배려하고 있을 수 있잖아요. 그 배려는 대부분 약자의 몫일 거고요. 성평등은 우리가 누군가를 끌어내리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요. 같이 위치에서 모두가 행복하자는 인권 운동입니다. 오늘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면서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인식이 얼마나 평등한지 고민해주셨으면 합니다.
◇ 박민> 오늘도 이렇게 용기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 송원>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