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땜’
국어사전에는 ‘앞으로 닥쳐올 액을 다른 가벼운 곤란으로 미리 겪음으로써 무사히 넘김’이라는 의미의 명사로 풀이되어 있다. 이런 의미라면 지난 7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대한항공은 확실한 액땜 덕에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 수 있었다.
대한항공은 7일 계양체육관에서 우리카드를 꺾고 도드람 2018~2019 V-리그 남자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올 시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후의 승자가 된 대한항공은 창단 첫 통합우승을 위한 첫 번째 필요조건을 충족했다.
대한항공과 우리카드의 남자부 6라운드는 많은 배구팬뿐 아니라 많은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이 경기장을 찾을 정도로 관심이 집중된 경기였다. 이 때문에 홈 경기를 준비하는 대한항공 및 관련 업체 직원들은 경기 개시 한참 전부터 경기장 안팎을 살피고 또 살폈다.
하지만 예상 못 한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했다. 시작은 구단 엠블럼 깃발의 시련이었다.
지난 시즌 V-리그 첫 번째 챔피언 결정전 우승으로 구단 엠블럼에 고대하던 ‘별’을 단 대한항공은 경기장 본부석 상단에 자랑스레 이를 내걸었다. 하지만 경기를 앞두고 시설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잠시 게양대에서 내려놓았던 엠블럼 깃발이 전기장치에 의해 들어 올려지며 관중석 의자에 걸려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승리가 필요한 홈 경기를 준비하던 대한항공 관계자뿐 아니라 해당 시설을 작동하던 관계자, 코트에서 응원 연습을 하던 치어리더 등 모두가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얼음처럼 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대한항공은 찢어진 구단 엠블럼 깃발을 떼고 경기를 치러야 했다.
한국배구연맹 규정에 의해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에는 양 팀 감독이 참석하는 사전 인터뷰가 열린다. 원정팀 우리카드의 신영철 감독이 나가고 박기원 감독이 들어와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멀쩡하던 접이식 책상다리가 접히며 큰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해프닝이 있었다.
바로 앞에서 벌어진 일에 박기원 감독도 토끼 눈이 됐을 뿐 아니라 인터뷰실에 있던 20명이 넘는 취재진도 화들짝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현장에 있던 대한항공 직원이 빠르게 책상을 수습했고, 박기원 감독도 다치지 않은 덕에 다 같이 웃고 넘길 수 있었다.
엠블럼과 박기원 감독에 이어 이날 계양체육관을 찾은 1845명의 배구팬도 불편을 겪어야 했다.
경기장 매표소의 발권 서버가 경기가 임박해 먹통이 되는 바람에 입장권을 현금으로 판매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마침 미세먼지를 밀어내는 찬 바람이 쌀쌀한 날씨를 만든 탓에 일부 배구팬은 경기장 입장 전 추위와 싸워야 했다.
하지만 이 모두는 결과적으로 대한항공이 V-리그 출범 이후 세 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수월하게 확정할 수 있도록 한 액땜이었다. 경기 전 연이어 벌어지며 대한항공 관계자를 진땀 흘리게 했던 사건·사고와 별개로 코트에서는 무난하게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하고 챔피언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우리카드의 승자를 기다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