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동 언니 대신…" 재판부에 손편지 보낸 길원옥 할머니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서 일본 '강제연행' 인정여부 밝혀달라
2016년 소송 당시 40명이던 생존자, 22명만 남아

7일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 길원옥(92) 할머니가 '한일위안부 합의 사건' 관련 정보비공개 처분 취소 소송을 심리하는 서울고등법원 행정3부(문용선 부장판사)에 제출한 편지. (사진=정다운 기자)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위안부라고 불렸던 23명의 생존 할머니 중 한사람입니다."

아흔두살의 길원옥 할머니가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에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보냈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일 위안부 협상' 과정서 일본이 강제연행 사실을 인정했는지 진실을 알려달라는 호소다.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생존자인 길 할머니가 지난달 20일 편지를 써내려 갈 때만 해도 23명이 생존해 있었지만 7일 현재는 22명이 남았다. 지난 2일 곽예남 할머니가 94세로 별세했기 때문이다.


7일 서울고등법원 행정3부(문용선 부장판사)에서 열린 '한일위안부 합의 사건' 관련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 소송의 마지막 변론기일에 송기호 변호사는 길 할머니의 편지를 제출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편지에서 길 할머니는 "저의 고향은 평양이고, 저는 13살에 일본에 의해 끌려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제 나이 이제 92살이다. 제가 죽기 전에 꼭 진실을 밝히기를 원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위안부 문제의 진실인 강제연행을 인정했는지를 국민이 알게 해주시길 간절히 호소드린다"고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썼다.

7일 서울고등법원 제1별관 앞에서 송기호 변호사가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 길원옥(92) 할머니가 재판부에 쓴 편지를 들고 있다. (사진=정다운 기자)
송 변호사는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일본이 '강제연행' 사실을 인정했는지 등에 대해 외교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외교부가 청구를 거절하자 2016년 1월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외교부가 1심 판결에 불복하고 관련 내용을 계속 공개하지 않으면서 2017년부터 현재까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4년째 재판이 끝나지 않으면서 처음 소 제기 당시 40명이었던 생존자 할머니는 22명만 남았다.

길 할머니와 가장 절친한 사이로, 함께 전쟁 피해에 대해 약 30년 간 인권운동을 펼쳐온 김복동 할머니도 올 1월 세상을 떠났다.

강경란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는 "김복동 할머니 생전에 길 할머니는 '언니가 말을 더 잘한다'며 김 할머니께 먼저 발언기회를 넘기곤 하셨지만 이제는 '언니가 없으니 내가 해야지'라고 하시며 편지를 쓰셨다"고 말했다.

이날 외교부 측 법률대리인은 재판부에만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비공개 문서를 제출했다. 외교부는 당시 합의 내용이 일본 정부와 비공개로 서약한 사항이라 정보공개 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송 변호사는 "국가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에서 피해자를 구제해야 하는 정부의 책무를 인정하라는 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며 "특히 이 사안은 외교부의 주장대로 단순한 외교관계 일반의 성격이 아니라는 점을 깊이 봐달라"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이날 변론을 종결하고 다음달 18일 선고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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