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하' 박정민 "이정재·유지태만 보면 무장해제"

[노컷 인터뷰] 본격 스릴러 주연 '사바하'에 임한 박정민의 자세
"난 불신하는 사람…현상의 이면 보고자 한다"
"'영화 공부' 결심한 이유? 국영수과사 공부 싫어서"
"유명세는 따라오는 것…재능 많다고 생각하지 않아"

영화 '사바하'에서 정나한 역을 연기한 배우 박정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바하'에 감사한 마음 뿐이죠. 제게 다시 원동력을 줬거든요."

2년 간 쉼없이 달려온 박정민에게 '사바하'는 특별한 터닝포인트로 남았다. 베트남 하노이를 다녀와서 완충된 상태로 들어갔지만 그것과 별개로 영화 작업에 임하며 배울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초반에 맛이 갔던 연기는 다행히 많이 삭제됐더라고요. 시나리오도 너무 좋고 이정재 선배와 한다니까 강아지마냥 뛰어다녔어요. 원래 모르는 걸 창피해하는 스타일인데 여기에서는 대답을 잘해주셔서 질문하는 습관이 생기니까 다음 영화에서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신나게 일했던 기억이 나요."

익숙하지 않은 스릴러 장르 영화에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평소 드라마 연기를 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준비했던 박정민에게 '사바하'는 완전히 다른 체계의 현장이었다.

"보통 드라마 장르 영화들은 배우가 대본에 없는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장면을 풍부하게 만드는 게 좋은 욕심이거든요. 그런데 '사바하' 같은 스릴러 장르는 그게 아니라 감독님이 갖고 있는 리듬대로, 감독님 원하는대로 하는 게 가장 좋더라고요. 정말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면 웬만해서는 리듬이 다 깨져요."

박정민은 평생을 교주 김제석에게 바친 정나한 역을 연기했다. '악'은 '악'이지만 그 역시 김제석에게 조종당한 피해자의 일면을 표현해야 했다. 그 사이를 오가는 것이 배우로서도 쉽지 않았다.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그걸 고통스럽다고 생각하지 말고 감수해야 한다는 걸 얻게 된 계기였어요. '사바하' 덕분에 전보다 기운이 좋아지고 지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촬영 초반에 장재현 감독님 방에서 맥주 한 잔 하다가 나한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관객들은 영화가 꽤 슬플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감독님에 제게 '시나리오 다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나한을 용서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연민이나 동정은 납득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사바하'에서 정나한 역을 연기한 배우 박정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바하'는 결국 인간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다. 이단을 쫓는 박목사(이정재 분)는 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을 던진다. 정나한은 믿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삶까지 내던질 수 있는 인물이다. 정나한에게 믿음이란 삶의 일부이며 직관적으로 연결돼 있다. 그러나 실제 박정민에게 '믿음'은 상당히 먼 이야기다.

"전 믿음이 많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게 좋은 의미라고 생각해요. 현상 이면에 있는 걸 고려하고자 하는 거니까요. 저 자신도 잘 믿지 않고 세간의 평가도 믿지 않아요. 그게 스스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 같아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적을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그게 바로 일종의 믿음이겠죠? 종교로 생각해보면 사람이 믿음의 대상에 의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 그 믿음이 더 건강하고 단단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 유지태와의 액션은 그야말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펼쳐지는 두 사람의 처절한 장면이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박정민과 유지태의 호흡 또한 밀도 높게 전개됐다.

"유지태 선배님은 저라는 배우가 참 앞길을 잘 걸어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느껴지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선배님이 개구진 모습도 있는데 그러면 저는 바보처럼 웃고 그랬죠. 정말 편해서 좋은 연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정재 선배님이든 유지태 선배님이든 정말 제가 존경하고 꿈꿔왔던 분들인데 그런 분들이 제 이름을 불러주시는 것만으로도 저는 무장해제가 돼요."

'영화학도'의 길을 걷기 전까지는 박정민 역시 김제석을 섬기는 정나한처럼 부모님 말에 다소 맹목적으로 따르던 모범생이었다. '공부'를 그만하고 싶었던 열아홉의 그는 자신을 말렸던 부모님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처음 자기 의지에 따라 선택한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처음에 영화 쪽으로 간다니까 엄청 싫어하셨죠. 그런데 제 의지대로 처음 이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시니까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나중에는 포기 하셨어요. 저 같아도 제 자식이 저처럼 특출난 곳이 없다면 말릴 것 같아요.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건 어렴풋이 생각하기는 했는데 고등학교 때 그냥 통보하듯이 영화를 배우겠다고 말씀 드렸어요. 일단 '국영수과사' 공부를 그만하고 싶었고, 한국예술종합학교는 8월에 학생을 뽑으니까 합격하면 수능 끝나고 3개월 정도 놀아도 되거든요. 그게 너무 큰 메리트였죠."

영화 '사바하'에서 정나한 역을 연기한 배우 박정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굳이 연기 방식을 따지자면 박정민은 '메소드 연기'에 가까운 배우다. 그가 연기했던 배역들은 '박정민'이라는 배우의 얼굴보다는 캐릭터의 이름으로 남는다. '동주'의 송몽규가 그랬고, '그것만이 내 세상'의 오진태가 그랬다.

"아마 삼청동 끝과 끝을 다녀도 절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걸요? 좋게 말하면 강렬한 캐릭터를 많이 해서 그런건데 저라는 배우가 결정적으로 쌓아놓은 이미지가 없어서 그런 것도 있겠죠. 감독님들도 저에 대한 이미지가 딱 떠오르는 게 없으니 뭐라도 붙여보려고 시도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서럽거나 하지는 않고, 좀 더 도움이 돼야 하는데 죄송스러운 건 있어요. 어쨌든 유명세나 인지도 같은 건 하던대로 하다가 자연스럽게 오는 거지 쫓는다고 잡히지 않는 거더라고요."

캐릭터 몰입을 위해서 박정민은 거의 모든 것을 '실제로' 한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는 서번트증후군을 앓고 있는 피아노 천재 오진태 역을 위해 피나는 연습 끝에 직접 연주 장면을 소화했고, '변산'에서는 고향에 내려간 래퍼 학수 역을 위해 랩 연습은 물론 직접 가사까지 썼다. 완전히 그 인물의 삶에 밀착하는 것이다.

"제가 재능이 다분한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남들보다 열심히 해야 남들이 하는 것 정도로 한다고 생각하고요. 사실 열심히 했던 모든 것들이 연기에 도움이 되지는 않죠. 다만 몸에 붙여 놓은 것들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런 찰나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뭐라도 해보는 거죠. 어쨌든 배우가 해내면 관객들이 느끼는 에너지와 감정이 다르니까 그게 배우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운좋게 그런 작품을 만났고, 예전에는 고되다는 생각도 했는데 요즘은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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