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과 관계 회복은 성과···'은둔' 이미지 벗어던진 北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베트남 방문의 공식적인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번째는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의 비핵화 협상을 위한 것이었고, 두번째는 베트남 공식 친선방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본격적인 협상이 이뤄졌던 28일, 오찬을 취소하고 기자회견을 앞당겨 실시한 뒤 출국 시간까지 앞당겨 떠나자 김 위원장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렸다.
김 위원장은 예정돼 있던대로 1~2일 친선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비핵화 협상과는 철저하게 구분지어진 일정이었다.
김 위원장이 집권 후 방문했던 중국과 판문점 남측, 또 1차 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는 모두 '비핵화 협상'과 연관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베트남 친선방문은 물론 비핵화 협상을 위해 찾은 곳에서 이뤄지기는 했지만 '북-베트남' 양자관계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베트남 친선방문을 통해, 김 위원장은 여느 정상들처럼 정상외교에 나서는 모습을 부각한 것이다.
지난달 26일 베트남 동당역에 도착할 때도 북한 최고지도자를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베트남 정부는 승강장에서부터 역 밖으로 나올때까지 길에 레드카펫을 깔고, 베트남 주민들도 북한과 베트남의 깃발을 함께 흔들며 환호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김 위원장이 이번 베트남 방문을 통해 '개혁과 개방'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당 중앙위 부위원장인 리수용·김평해·오수용 등은 산업도시인 하이퐁과 유명 관광지인 하롱베이를 찾아 관광하고 베트남 주요 인사들과 만났다. 이 역시 비핵화 협상을 위해 베트남을 찾은 김 위원장이 방문하기보다는 경제, 산업 분야를 맡고 있는 북한 실무자들이 시찰함으로써 '경제협력'의 초석을 다지는데 더욱 집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 매체들은 북미정상회담이 끝난 뒤 결렬된 비핵화 소식은 전하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의 베트남 방문 소식은 전하면서 '세계 정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라고 추켜세웠다.
베트남 언론들도 김 위원장이 응우옌쑤언 푹 총리와 면담을 갖고 베트남의 경제 발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한때 소원했던 북-베트남 관계를 회복하며 경제협력의 기틀을 닦은 셈이다.
◇ 사상 초유의 북미정상회담 결렬···'제재' 벽 아직도 높아
그러나 28일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예정된 시각을 훌쩍 넘긴 뒤에도 오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초 단독·확대회담-오찬-서명식의 일정도 미리 공개가 됐던터라 이상한 기류가 감지됐다. 결국 두 정상은 확대회담까지만 가진 채 숙소로 돌아갔고, 합의문 도출에는 실패했다.
북미정상회담 일정 시작 직전까지 실무협상이 치열하게 이어지고, 여러가지 구체적인 조치들도 거론되면서 지난 1차 정상회담보다 한층 더 구체화된 조치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이 커진 상황이어서 결렬의 충격파는 생각보다 컸다.
북한으로서는 미국과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정의와 수준에 이견을 확인하면서 다시 한번 제재의 벽을 넘지 못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를 약속하며 전면적 제재 완화를 요구했지만 실패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영변 핵시설 외에도 굉장히 큰 규모의 핵시설이 있다"며 구체적인 '+α'를 요구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이 추가적인 비핵화를 해야 (제재 완화가) 가능하다"며 미국이 만족할만한 비핵화가 약속, 혹은 선행되기 전까지는 '제재'란 틀이 확고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북한은 2020년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종착점으로 두고 있다. 때문에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는 가시적 성과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북한이 이번에도 경제제재를 전면적으로 해제해 줄 것을 기대한 것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 집권 아래 북한 주민들에게 최고지도자의 성과로 내보일만한 것을 얻지 못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결국 제재의 틀 속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기만 하면서 북한으로서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상황 속에 빠졌다"고 평가했다.
◇ 레이캬비크 합의처럼 후일 기약?···공은 결국 북한에
북한으로서는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최소한 미국의 입장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대북 초강경파로 분류되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3일(현지시간) 미국 언론과 잇따라 인터뷰를 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문서로 '빅딜' 제안을 전달했다고 공개했다.
북한이 포기해야 하는 것과 이에 상응하는 경제보상을 나열한 '빅딜 문서'를 준비함으로써 일괄타결의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한 셈이다.
지난해 고위급 회담 재개 국면부터 수많은 예상들과 타결 가능성을 예측하는 전망들이 쏟아졌지만 결국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서로의 의사를 확실하게 확인한 셈이다.
북한으로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한미가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서도 기존 키리졸브연습과 독수리훈련을 대폭 축소 조정해 실시하는 등, 북미대화 등 비핵화를 위한 북한과의 대화동력을 이어나 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입장 역시 확고하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직후 "북한이 전면적 제재 완화를 요구해 틀어졌다"는 미국 측의 기자회견에 정면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등, 양 정상이 서로에게 회담 결렬의 책임을 떠넘기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베트남을 떠난 이후에는 아예 결렬 소식을 내부에 알리지 않고 비난 수위도 조절하는 등 신중한 모습이다.
그러나 공은 북한에 넘어간 상황이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넘긴 '빅딜 문서'를 검토하고 내부 논의를 거쳐 조만간 노선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통일안보센터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미국이 북한에 맥시멈(최대한의) 리스트를 넘기며 최대를 요구했고, 이를 협상해 나가는 과정이 있어야 할텐데 적어도 북한에 핵폐기 로드맵은 필요하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도 미국 정부가 제시한 경제적 상응조치를 부각시키며 북한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과 함께 잠시 분위기가 냉각됐지만, 이후 '반걸음 후퇴 한걸음 전진'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미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를 운영하는 조엘 위트 스팀슨센터 수석연구원은 하노이 회담이 실패로 끝나거나 결렬됐다가 협정으로 이어진 1986년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레이캬비크 회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