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협약 비준이 오히려 노동법 개악으로 흐를 수 있다며 노동법률단체가 단식농성에 돌입하는 등 반발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ILO 100주년인 올해 안에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대선 기간부터 공들여왔다.
특히 오는 7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2차 본회의에 문 대통령의 참석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이를 앞두고 결과물을 선보이기 위해 정부는 최근 노사정 물밑 협상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경사노위에 파업시 대체근로 전면 허용과 노조의 직장점거 금지, 사용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 삭제,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쟁의행위 탄반투표 절차 제한 강화 등을 요구한 상태다.
대체근로 전면 허용과 직장점거 금지, 쟁의행위 절차 엄격화 등은 노조의 가장 중요한 무기인 파업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대표적인 조치들이다.
ILO는 한국의 현행 관련법조차 대체근로 허용폭이 너무 넓어 국제노동기준에 부족하다고 지적하는데, 이를 더 경영계 입맛에 맞도록 바꾸자는 것이다.
사용자의 반조합계약, 지배개입 등을 뜻하는 부당노동행위의 경우 현재도 검찰의 기소율이 9.5%에 달하고, 2000년 이후 부당노동행위 피의자를 구속수사한 경우가 겨우 2건에 그칠 정도로 구제율이 극히 낮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아예 이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삭제하거나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사실상 사용자가 노동3권을 마음대로 침해하도록 '면죄부'를 달라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이미 정부와 여당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와 결정체계 개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굵직한 노동 사안마다 논의 시한을 정해놓은 뒤 노사정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강행처리하겠다며 압박하기를 반복해왔는데, 이번에도 이 방식이 되풀이되는 셈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ILO 협약 비준의 결론을 서둘러 내리기 위해 노사 간의 요구사항을 맞바꾸는 '빅딜'을 추진하려다 양측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노총법률원 등 노동 전문 법률가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ILO 협약 비준 속도전에 반대하며 단식농성까지 벌이고 있다.
만약 경영계의 요구들이 받아들여지면 결사의 자유를 강화하기 위한 ILO 협약을 비준한 탓에 오히려 노조할 권리가 위축되는 엉뚱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 신인수 법률원장은 "OECD 회원국 가운데 ILO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미국과 대한민국 밖에 없다"며 "당연히 비준해야 하는데, 경사노위나 고용노동부는 협약을 비준하려면 사용자에게 대가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원장은 "흥정과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노동기본권을 바겐세일해야 ILO 협약을 비준한다는 것"이라며 "우리 헌법에도, 국제노동기준에도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경총이 주장한 의제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독대하며 은밀히 제기했던 민원사항과 같다"며 "적폐정부 시절에도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돈으로 해결하려던 요구를 지금 드러내놓고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