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화물선은 왜 광안대교로 돌진했나?"

1차 사고 이후 한 번에 선박 방향 돌리려다가 터닝써클 벗어나
광안대교 충돌 위기 인식하고 후진 기어 넣었지만 전진 타력에 계속 돌진
해경 "음주와 1차 요트 충돌 사고에 따른 선장의 비정상적인 판단이 사고 불러"

러시아 선적 대형 화물선이 광안대교를 충돌하는 초유의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선장의 음주 등 사고 원인에 대한 윤곽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현재까지 이뤄진 해경의 수사 결과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봤다. [편집자 주]

28일 부산 광안대교에 초대형 화물선이 충돌했다. (사진=인스타그램 'canaan_manager' 제공 영상 캡쳐)
러시아 선적 화물선인 씨그랜드호(5천988t)는 지난달 28일 오후 4시 부산 남구 용호항 화물부두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출항할 예정이었다.

용호항은 직선거리로 350m 가량 떨어진 광안대교와 방파제를 양 옆에 두고 육지로는 대단지 아파트가 조성된 용호 매립지를 끼고 있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항이다.

씨그랜드호는 출항을 위해 이날 오후 3시 40분쯤 닻을 올렸으나, 어찌 된 일인지 선박이 중심을 잃으면서 바로 옆 계류장에 정박 중이던 요트 2척과 바지선 1척을 잇따라 들이 받았다.

이 사고로 요트에 타고 있던 승선원 3명이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의 부상을 입었다.

씨그랜드호는 1차 사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광안대교 방향인 우현으로 선수를 돌렸다. 선박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 먼바다 쪽으로 빠져나가려한 것으로 보인다.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 교신이 이뤄진 것으로 미뤄 도주 보다는 추가 사고를 피하기 위해 선박을 이동한 것에 해경은 무게를 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씨그랜드호 선장 등은 터닝써클(turning circle· 선박이나 차량이 회전하는 데 필요한 최소의 곡선)을 간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경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씨그랜드호와 같은 규모의 대형 선박이 좁은 용호항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회전과 후진을 반복하며 터닝써클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써야한다.

하지만, 전장이 113m에 달하는 씨그랜드호는 선박을 한 번에 반대 방향으로 돌리려다가 터닝써클을 벗어났다.


이 때문에 원을 그리며 오른쪽으로 회전하던 씨그랜드호는 먼 바다로 선수를 돌리지 못한 채 눈앞에 놓인 광안대교와 맞닥뜨리게 된다.

충돌 위기를 뒤늦게 파악한 씨그랜드호 선장 등은 후진 기어를 넣었지만 이미 속도(전진 타력)가 붙은 선박은 광안대교를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선박 충돌로 광안대교 시설물 일부가 파손됐다. (사진=부산경찰청 제공)
씨그랜드호는 결국 광안대교 10~11번 사이 교각 하판을 충돌한 뒤에야 이해할 수 없었던 짧은 항해를 끝냈다.

해경이 확보한 씨그랜드호 VDR(항해기록저장장치)에는 사고 이후 승선원들 간에 '술'과 관련한 언쟁 수준의 대화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사고 직후 해경이 선박에 수사관을 보내 승선원들에 대한 음주 측정을 한 결과 선장인 S(43)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86%의 만취 상태로 나타났다.

해경은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선장 S씨의 비정상적인 판단을 꼽고 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요트 등을 들이 받는 사고를 냈다는 부담과 흥분 등이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게 했다는 것이다.

해경에 긴급체포된 선장 S씨는 광안대교를 충돌한 이후에 술을 마셨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머지 승선원들은 "잘 모르겠다"는 진술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해경이 측정 당시 혈중알코올농도와 대상자의 신체조건 등을 비교 분석해 음주 시각을 추정하는 '위드마크' 기법을 적용한 결과 S씨는 출항 전 술을 마신 것으로 판단됐다.

이 같은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해경은 2일 업무상과실선박파괴, 업무상과실치상, 해사안전법위반(음주운항) 혐의를 적용해 S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부산해양경찰서 관계자는 "선장의 비정상적인 판단이 광안대교 충돌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음주와 1차 사고가 판단력을 흐리게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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