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업계에 따르면 분단 이후 최초의 북한 진출 사례는 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의 1997년 12월 함경남도 신포시에 금호출장소 개설이다. 금호출장소는 대북 경수로 사업에 파견된 우리 근로자들의 임금지급과 송금 등을 맡았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장을 선언하고 경수로 사업이 종결돼 금호출장소는 2006년 1월 철수했다.
다음 사례는 개성공단 가동에 따라 개성에 진출한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2004년 12월 개성공단지점을 열어 입주기업 대상 여신·수신, 신용장, 외환 업무 등 금융서비스를 제공했다. 개성공단 지점은 남측 파견직원 뿐 아니라 북한 근로자도 고용했다.
우리은행 개성공단지점은 2013년 4월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따라 당시 박근혜정부의 개성공단 철수 조치로 6개월간 폐쇄됐다 그해 9월 영업 재개했다. 그러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인 2016년 2월 개성공단 완전 폐쇄 조치가 이어져 결국 철수했다.
농협은 농협은행 출범 전인 2006년 8월 북한 금강산지구에 농협 지점을 냈다. 금강산 관광객 대상 환전 업무, 지구 내 남한 파견 근로자들 대상 여신·수신 등을 행했다. 금강산 지점은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격 사망 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됨에 따라 2009년 7월 철수했다.
남북이 분단되기 전에도 북위 38도선 이남에 본점을 두고 있는 은행들의 이북 영업소가 65곳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 조흥은행 14곳과 옛 상업은행 27곳, 옛 한일은행 24곳 등이다. 조흥은행은 2006년 신한은행과 합병했고,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1998년 합병을 통해 현재의 우리은행이 됐다.
이밖에 1949년 2월1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조선식산은행(산업은행) 24곳, 조선은행(한국은행) 8곳 등 현재 국책은행들의 북한 지역 사업장도 있었다. 해당 기사는 "(북한 정권에 접수된) 은행만 해도 100여개소, 금융조합(서민금융기관의 일종)을 합치면 수백을 헤아린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