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만은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집과 차도 없던 마이너리그 시절에 아들을 보고 싶어하는 부모에게 "미국은 다음에 오시라"고 했다.
2018년 12월에는 달랐다. 한국으로 오지 않고 미국에 머물며 훈련하던 중 틈을 내 부모와 여행했다.
당당히 '메이저리거'로 자란 아들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였다.
26일(한국시간) 탬파베이가 스프링캠프를 차린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샬럿의 샬럿 스포츠파크에서 만난 최지만은 부모님과 미국 여행을 떠올리며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나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부모님께 '여전히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는 미국을 방문하시려는 부모님을 말렸다"며 "차도, 집도 없었는데 지금은 아주 여유롭지는 않아도 부모님을 모실 공간은 있다"고 웃었다.
베이스볼레퍼런스가 공개한 최지만의 2018년 연봉은 85만 달러(약 9억5천만원)다.
10년 가까운 세월을 참고 견딘 결과다.
2010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며 미국 생활을 시작한 최지만은 볼티모어 오리올스,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뉴욕 양키스, 밀워키 브루어스를 거쳐 2018년 6월 탬파베이에 입단했다.
AAAA급 선수(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트리플A를 오가는 선수)로 평가받던 그는 탬파베이에서 기회를 보장받았고, 2019년 생애 처음으로 '풀타임 메이저리거'를 꿈꾼다. 구단은 이미 최지만을 주전 지명타자 혹은 1루수로 분류하고 있다.
최지만과 비슷한 시기에 미국행을 택한 선수 대부분이 한국으로 돌아갔다. 시애틀에 함께 입단했던 김선기(넥센 히어로즈), 마이너리그 시절 함께 살았던 나경민(롯데 자이언츠) 등이 KBO리그에 입단하는 모습을 보며 최지만도 많이 흔들렸다.
그는 "나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많았다"고 고백하며 "무명이었던 나를 응원해주는 팬들이 계셨다. 그분들이 계셔서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최지만은 경기장을 찾아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팬들에게 과도할 정도로 팬 서비스를 한다. 공도 많이 던져주고, 사인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최지만은 "한국 팬들을 많이 뵙고 싶다. 찾아오시면 이것저것 '넘치게' 드리겠다"고 웃었다.
다음은 최지만과의 일문일답이다.
-- 올해는 개막 로스터(25명) 진입 걱정 없이 스프링캠프를 치른다.
▲ 스프링캠프에 돌입하기 전에 구단, 케빈 캐시 감독님께서 나를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언질을 주셨다. 예전에는 시범경기 결과에 연연했지만, 지금은 여유를 가지고 훈련하고 있다. 확실히 마음이 편하다. 구단과 코칭스태프가 '공격력은 의심하지 않는다. 1루 수비만 신경 써 달라'고 했다.
-- 1루수 수비에 대한 평가도 좋던데.
▲ 사실 구단과 감독님께서 수비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수비도 내 역할이다. 왜 내 수비력을 믿지 못하나'라고 장난 섞인 항의를 했다.(웃음). 최근 들어서 '수비도 기대 이상'이라고 하신다. '대체 얼마나 나를 믿지 못한 건가'라고 받아쳤다.
-- 훈련할 때 표정이 밝아 보인다. 팀 내 입지가 탄탄한 덕인가.
▲ 예년과 분위기가 다르긴 하다. 예전에는 스프링캠프 기간에 긴장을 많이 했다. 지금은 마음 편하게 훈련에 집중한다.
-- 아직 시범경기에서 안타가 없는 것(3타수 무안타)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 시범경기도 훈련 연장선에 있다. 시범경기에 나설 때 오픈 스탠스도 해보고, 어깨도 열어 보는 등 타격 자세의 변화를 시험하고 있다. 더 발전하려면 바뀌어야 한다.
-- 좌투수에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 마이너리그에서 좌투수 상대 성적이 0.260∼270 정도였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좌투수 상대 성적은 표본(21경기 22타수 3안타)이 너무 적지 않은가. 좌투수 공략에도 자신이 있다
-- 올해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리면 만족할 수 있는가.
▲ 생애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풀 시즌을 소화할 수 있는 해다. 한 시즌을 건강하게 완주하면 좋겠다. 시즌을 치르다 보면 슬럼프가 올 수밖에 없다. 그때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 코리언 빅리거 5명(추신수, 오승환, 류현진, 강정호) 중 막내지만, 미국 생활은 추신수 다음으로 오래 했다.
▲ 나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많았다. 견디고 견뎌서 여기까지 왔다.
--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진출한 선수들이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갔다.
▲ 많이 견디기 힘들었다. 김선기, 나경민, 문찬종, 신진호 등 같이 왔던 선수들이 돌아가는 걸 보고 '나도 이제 한국으로 가야 할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내 팬은 많지 않다. 그런데 무명이었던 그때에도 몇몇 팬들이 응원해주셨다. 그 덕에 버텼다.
-- 다른 코리언 메이저리거보다 한국에서 덜 주목받는 것에 서운하지 않는가.
▲ 오히려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배들에게 감사하다. 그 선배들 덕에 내 이름도 조금은 알려진 것 같다.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주전 선수로 오래 뛰면 더 알아주시지 않을까. (한인이 많은) 캐나다 토론토 원정을 가면 한국 분들이 많이 오셔서 응원해주신다. 나는 사실 튀는 걸 싫어한다. 그런데 야구장에서는 나도 모르게 흥이 난다. 많은 공을 관중석에 던지는 등 팬 서비스도 지나칠 정도로 한다. 한국 팬들을 많이 뵙고 싶다. 저를 찾아주시면 지나칠 정도로 많은 서비스를 받을 것이다.(웃음)
-- 비시즌에 미국에서만 훈련했는데.
▲ 지난겨울 한국에 들어갈 틈이 없었다. 대신 지난해 12월에 부모님께서 미국으로 오셨다. 나도 미국에서 오래 뛰었지만 제대로 여행한 적이 없어서 부모님과 함께 미국 여행을 했다. 사실 부모님께서는 예전부터 미국에 오셔서 내가 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셨다. 마이너리그에서 뛸 때는 집도 차도 없었다. 나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부모님께 '여전히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는 미국을 방문하시려는 부모님을 말렸다. 이번에 부모님과 여행하며 정말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