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가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의 기초 자료를 종합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3.1운동 데이터베이스'를 최근 공개했다.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대구·경북 3.1 만세시위는 모두 118회.
대구·경북의 3.1만세 시위는 3월 3일 독립선언서가 경상북도 대구부로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준비됐다.
그로부터 5일만인 3월 8일 서문시장에서 첫 3.1 만세 시위가 시작됐고 기독교인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위를 벌였다.(참가수는 800~1만명 추정)
시위대는 구한국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고 대구경찰서와 대구헌병분대가 출동해 무력으로 저지했고 수백 명이 경제 연행되면서 시위대는 해산됐다.
시위에 참여했던 김용해씨는 체포후 경찰의 구타로 부상을 입고 석방된 뒤 숨졌다.
대구에서 시작된 시위는 경북으로 전파됐고 3월 7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 경부철도 신동역 부근 선로 위에 큰 돌을 올려놓고 기차 운행을 방해하면서 저항했다.
만세운동 위주의 시위는 3월 17일 안동군 예안시장 시위부터는 무력시위로 바뀌었다.
당시 장날을 맞아 시장에 모인 1천500여명의 주민들은 만세 시위를 벌였고 이 가운데 20여명이 예안경찰관주재소로 연행되자 시위대가 주재소로 몰려가 유리창을 깨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헌병들의 발포로 총상을 당한 사람도 다수 발생했다.
이후 시위는 더욱 격화되면서 3월 18일 경북 영덕군 영해면 성내동시장에서 열린 만세시위에서는 수백명이 영해면사무소와 영해경찰관주재소 등을 습격해 건물을 부수고 서류와 집기 등을 파손했다.
시위대는 일본군 대구 보병연대 등에서 출동한 군인들의 무력 진압으로 해산됐고 시위대 4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2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3월 20일 안동에서는 경찰서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유치장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대구·경북에서는 5월 7일 청도군 매전면 귀촌동에서 노동자 수십 명이 시위를 벌인 것이 마지막 3.1 만세 시위로 기록됐다.
이는 경기도와 황해도, 평안북도, 경상남도 등에 이어 당시 국외를 포함해 전국 15개 시도 가운데 5번째로 많았다.
또, 시위 과정에서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지역별로는 경북도내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안동지역이 20회로 가장 많은 3.1만세 시위가 벌어졌고 의성지역이 16회로 뒤를 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 조광 위원장은 "3.1운동 관련 자료를 누구나 쉽게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도록 데이타베이스화를 했다"며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는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