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의 속도'는 경제 성장세보다도 빠른 것으로 분석됐다.
일부에선 지난해 부채의 질은 오히려 후퇴했고 앞으로 빚 증가 속도도 예상보다 둔화하지 않을 수 있다며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신용은 1천534조6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5.8% 늘었다.
통계청의 가구 추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가구는 1천975만2천가구로 1.2% 증가했다.
가구 수보다 가계신용이 가파르게 늘면서 가구당 부채는 7천770만원으로 4.6%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 보험, 신용협동조합, 상호금융, 대부업체 등에서 빌린 돈에 아직 갚지 않은 신용카드 값(판매신용)까지 고려한 총괄적인 가계부채 지표다.
한은이 2002년 가계신용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구당 부채는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2015∼2016년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정부가 부동산을 부양하기 위해 2014년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하고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며 '빚내서 집 사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탓이다.
가구당 부채는 2015년(6천328만원) 6천만원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이듬해인 2016년(6천962만원)에는 단번에 7천만원 문턱까지 불어났다.
2012∼2014년 3∼4%대이던 가구당 부채 증가율은 2015년 9.1%, 2016년 10.0%까지 커졌다.
이후 정부가 가계부채 총량 관리에 들어가고 기준금리도 오르며 2017년 증가세(6.7%)가 둔화했다. 지난해에는 증가율이 더 떨어져 2013년(4.2%)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오름세를 지속했다.
정부의 명목성장률 전망치(3.3%)를 바탕으로 추정해보면 작년 GDP 대비 가계신용은 85.9%로 전년 대비 2.1%포인트 올라 사상 최대였다.
경제 규모보다 가계 빚이 더 빨리 불었다는 뜻이다. 10년 전인 2008년(65.5%)보다 20%포인트 이상 오른 셈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가계부채의 덩치 자체가 크고 증가율도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만큼 유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대출 규제 효과로 부채 증가세가 둔화했고 앞으로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지리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9·13 대책, 10월 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Debt Service Ratio) 규제 도입 등으로 대출 고삐를 바짝 조였다.
지난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 금통위원은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시장 정책과 가계부채 대책 영향으로 최근 증가율이 둔화하는 등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며 "올해에도 이러한 추세는 지속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출의 질은 악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출 규제 효과로 은행 문턱을 고신용·고소득자만 넘으면서 저신용·저소득자는 제도권 대출에서 밀려 아예 통계로 잡히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의지를 보면 가계부채 증가율은 앞으로 4%대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면서 "그렇게 되면 일정 신용등급 이상, 소득이 되는 차주만 은행권에서 돈을 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가뜩이나 저소득층의 소득도 줄고 일자리도 감소하는데 돈을 빌릴 수 없게 되면서 이들이 비제도권으로 밀려나 통계에 잡히지 못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가계부채 증가율이 더 떨어지지 않을 수 있어 경계를 늦출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가계부채연구 센터장은 "은행 대출은 이미 고신용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규제 영향을 덜 받고 은행들은 리스크 대비 수익성이 높다는 이유로 가계대출을 선호한다"며 "올해 은행들의 가계대출 목표치가 7% 정도임을 고려하면 전체 가계부채 증가율은 둔화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