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5단독 이재은 부장판사는 최근 '비폭력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다 병역법과 예비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28)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집총 등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종교적 이유가 아닌 '그밖의 양심'을 인정한 사례다.
그러나 일선 판사들 사이에선 앞으로 접수될 수 있는 다양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을 두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재경지법 판사는 "이번에 나온 비폭력 신념 병역거부는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며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저마다의 신념을 주장하며 병역 거부를 주장할텐데 그걸 일일이 들여다보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관된 기준에 따라 신념의 진실성을 측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그는 "수많은 신념들을 판단하려면 각각 기준이 되는 판례가 있어야 할 텐데 그걸 축적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게다가 신념을 파악하는 것은 삶의 거의 모든 행적을 검토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판사들은 지난해 대법원이 빗장을 열었다고 보고 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강제징집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사건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종교에 대한 신념이 진실한지 판단하는 작업과 그밖의 신념들을 들여다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종교적인 신념이 투철한지 따져보는 작업은 차라리 더 쉽다"며 "그 사람이 꾸준히 종교활동을 했는지를 중심으로 증거기록을 검토한다면 납득할 수 있겠지만 그밖의 신념은 어떻게 판단할지 우려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A씨는 수년에 걸친 수사기관의 조사와 재판을 받아야 했다. 재판부는 부친의 폭력적인 성향과 가정환경 등의 배경까지 검토하며 A씨의 신념이 진실한지 검증했다.
신념을 판단하는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앞서 제주지검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재판에서 "해당 병역거부자가 '총쏘기 게임' 등을 이용했는지 확인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각에선 "집총 거부와 '총쏘기 게임'이 무슨 연관성이 있느냐"는 지탄이 나오기도 했다.
고육지책으로 법정에 신념의 진실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전문 감정인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재경지법의 다른 판사는 "신념의 진실성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납득할만한 감정제도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신념을 점검하는 감정인 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