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고소한 소년 '자인'은 아마도 12살이다. 무책임한 부모 탓에 출생신고가 돼 있지 않아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의 동생도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병원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간다.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영화 <가버나움> 속 이야기다. 영화 속 사례는 출생신고를 부모의 손에만 맡겨두면 아이들이 공식적 신분을 얻지 못해 인권의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처럼 출생등록이 되지 않아 생기는 비극을 한국에서는 막을 수 있을까.
◆ 부모 손에 달린 출생신고, 누락돼도 알 길 없어
자녀의 출생은 전적으로 부모의 신고에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내의 경우 가족관계등록법상 출생신고의 1차 의무는 부모에게 있다. 산부인과 등 병원에서 출산을 한 경우 의료인은 부모에게 출생증명서를 발급한다. 부모는 출생증명서를 바탕으로 직접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단돈 5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뿐이다. 국가가 출생신고 누락 사실을 파악할 방법도 없다. 출생증명서를 발급하는 의료인기관이 국가에 출생 사실을 알리는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에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5만원 이하의 과태료는 처벌조차 이뤄지기 힘든 구조다.
부모의 '사망' 등과 같은 특수한 이유가 아니라면 동거 친족, 의료인 등 후순위로 출생신고 의무가 넘어가지도 않는다.
실제로 2016년 광주에서는 부모가 10명의 자녀 중 4명을 제때 출생신고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 아이들은 각각 18살, 15살, 13살, 12살이던 2015년에야 공식적 신분을 얻었다. 그전에는 주민번호도 없고, 의료보험 혜택도 볼 수 없었던 '유령' 아이들이었다.
이들의 존재가 드러난 것도 우연에 가깝다. 당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자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미취학,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미취학 아동이 있다는 것을 파악해 누락돼 있던 형제·자매들을 함께 발견했다.
전문가들도 "출생신고가 누락된 아이들을 국가가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송효진 연구위원의 논문 '출생신고제도의 개선방안'(2017)에서는 "의료기관의 출생신고 개입은 (부모가 신고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발생"한다고 짚었다.
논문은 광주 사례를 들어 "부모의 고의, 태만으로 얼마든지 출생신고 누락 및 지연이 가능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며 "출생신고 자체가 누락된 아동은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우연히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한 국가가 아동의 출생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출생신고가 누락된 경우, 아동은 태어났음에도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의료, 보건, 복지, 교육 등 국가 지원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이다. 송 연구위원은 출생신고 누락 시 예방접종, 의무교육을 제대로 받기 어려운 것은 물론 "영아 유기, 신생아 매매, 불법·탈법적인 입양 등 아동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사회문제들로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 "의료기관도 출생신고 하게 해 사각지대 최소화"
지난 24일 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은 '투명인간 방지법'(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법률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에는 ▲분만에 관여한 의료인도 출생증명서를 작성, 송부 ▲혼인 중·혼인 외 출생 신고의무자 구별 폐지 ▲출생신고 의무 위반 시 과태료 상향(5만원 이하→20만원 이하) 등의 내용이 담겼다.
법안이 통과돼 부모뿐 아니라 '의료기관'도 출생신고 의무를 지게 되면 출생신고가 누락된 아이들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신생아 대부분이 의료기관에서 태어나는 만큼, 병원이 출생을 모두 보고하게 되면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2017년 출생통계에 따르면 출생아 중 99.6%는 병원에서 태어났다.
이 의원은 제안이유에서 "최근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아 죽은 후에야 존재가 밝혀진 이른바 '투명인간' 아이들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며 "이런 출생 신고 미비로 인해 아동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출생 신고 누락으로 인한 아동인권의 침해를 보다 적극적으로 방지하고자 한다"는 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주요 선진국에서도 같은 취지로 부모 외의 제3자에게도 일차적인 출생신고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서종희 교수는 논문 '출생신고 및 등록절차에 관한 비교법적 연구'(2016)에서 미국 대부분의 주를 비롯해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독일, 이탈리아에서 관계기관(병원 등)에 출생을 일차적으로 통보하도록 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영국의 경우, 아이가 태어난 즉시 병원 등록시스템을 통해 출생아에 대한 의료보장번호가 발급된다. 이후 부모 등이 출생에 대한 정보를 신분등록 담당관에게 제공하게 된다. 독일, 이탈리아 등은 부·모뿐만 아니라 법으로 정해진 제3자(의료기관 장, 시설책임자, 산파 등)에게도 일차적인 신고의무를 부과한다. 독일의 경우 부모가 출생신고를 했더라도 병원은 서면으로 출생신고를 해야 하며, 시간적으로 앞선 신고를 기준으로 출생등록이 이뤄진다.
반면 한국은 부·모에게 일차적 의무, 제3자에게 이차적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런 방식을 택하고 있는 국가는 프랑스, 싱가포르, 일본 등이다. 프랑스, 싱가포르의 경우 병원에서 즉시 출생신고가 가능하도록 해 접근성이 높다.
◆ "미혼모는 병원 못 가고 위험한 출산"
지금까지 의료기관에서 출생신고를 하도록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는 국회에서 수차례 있었지만 모두 무산됐다. 미혼모들이 의료기관을 피할 수 있다는 부작용을 우려해서다.
의료기관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는 법안은 19대 국회에서도 세 차례 발의됐으나 모두 통과되지 못했다. 20대 국회에서는 2017년 6월 함진규 의원이, 같은 해 8월 권미혁 의원이 해당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지금까지 계류 중이다.
함진규·권미혁 의원안에 대한 법제사법위원회 검토보고서에서는 의료기관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려면 "미혼모 등의 의료기관 출산기피"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이의 출생신고를 원치 않는 산모는 병원을 기피해 위험한 출산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의 경우는 모두 미혼모 등 취약한 산모들에게 종합적인 지원을 제공해 제도적 부작용을 해소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익명출산제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주최한 '아동의 출생신고 권리보장 방안모색 토론회'(2016)에서 소라미 변호사는 "익명출산제도는 보편적출생등록제도 도입을 전제로 검토되어야 한다"며 "위기 상황의 모든 산모가 안전하게 임신과 출산 전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종합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신뢰'출산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종희 교수도 앞의 논문에서 "유럽국가(프랑스, 독일)의 익명출산제도 및 미국의 Safe Haven Law(부모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출생신고를 원치 않는 부모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병원에서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산모의 신원을 드러내지 않아도 출생신고가 가능하게 하자는 의미다. 서 교수는 한국 미혼모의 열악한 현실을 지적하며 "익명출산제도의 도입과 별도로 미혼모·한부모 가정을 지원하는 공적 부조의 개선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한편, 병원 아닌 곳에서 태어난 아이도 출생신고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시행 5년: 평가 및 개선방안'(송효진·박복순, 2013)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의료기관에게 출생신고 책임을 부과하는 '출생통보제도'에 대해 담당공무원·법률전문가 7~80%가 찬성했다. 그러나 일부는 통보제로 전환하면 의료기관 밖에서 출생한 아이의 출생신고가 누락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종합하자면, 한국에서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등록 아동'을 국가가 파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의료기관에서 태어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도록 '출생통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다만 미혼모 등 출생신고를 원치 않는 산모가 의료기관을 피하게 될 수 있으니, 익명출산제도와 같은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