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힐뻔한 '사법농단 의혹'…드러난 결정적 계기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5년 10월 계룡대에서 열린 건군 제67주년 경축연에서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사법 농단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기소하면서 8개월간 이어진 '마라톤 수사'도 일단락 되는 분위기다.


이번 사건이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배당될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장기간의 수사로 이어질 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지난해 8월 말, 법원의 잇단 압수수색 영장 기각으로 수사가 답보상태를 빚자 검찰 고위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년까지 수사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놨지만 일종의 '레토릭'일 것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수사는 해를 넘겨서까지 진행됐다. 다만 자칫 사법농단 의혹이 영영 묻힐뻔한 사건이 될 수도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사 기간이 길고 짧음을 논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해보이는 측면도 있다.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진 것은 2017년 3월이다.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를 견제했고, 이에 항의한 이탄희 판사의 법원행정처 발령이 번복됐다는 의혹이 보도된 것이다.

이후 양승태 대법원장은 자체 조사를 지시했고, 그해 4월 대법원 1차 자체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이규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를 부당하게 견제했으나 블랙리스트 의혹은 사실무근이다." 한마디로 짜고 친 거짓말이었다.

법원 내부에서는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추가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장은 그해 9월 퇴임할 때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두 차례의 추가조사가 진행됐다.

2018년 1월 대법원 2차 자체 조사결과 발표에서는 판사 동향파악 문건이 발견됐다. 이에 대법원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을 구성했고 그해 5월 특별조사단은 3차 자체 조사결과를 통해 "판사 사찰 문건은 발견됐지만 인사상 불이익 주는 블랙리스트 문건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발견된 문건의 해석을 놓고 특별조사단과 여론의 간극은 상당했다. 여론은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고 들끓었다. 이에 질세라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이른바 '놀이터 기자회견'을 자청해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더 나아가 현 대법원장을 은근히 공격하는 발언도 덧붙였다.

장고끝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8년 6월15일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의 '수사 의뢰'라는 강수를 꺼내든 것이다.

그전까지 '삼권분립' 운운하며 뒷짐을 지고 있던 검찰은 대법원장의 발언에 따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를 본격화했다.

당시 검찰은 배당 하루만에 법원행정처에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관련 자료를 내놓으라고 서면 요청하는 등 '수사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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