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양승태·박병대·고영한 일괄 기소…'사법농단' 수사 일단락

법관 파견 늘리고 상고법원 도입 위해 '재판개입' 혐의
사법부 정책 비판적인 법관들 사찰 및 인사불이익 지시 혐의도
박·고 전 대법관 함께 기소···임종헌 전 차장도 추가기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한형기자
'사법농단' 의혹으로 구속된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재판에 넘겨졌다.

11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1)·고영한(64) 전 대법관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강제징용 소송 등 재판 개입 △법관 인사 불이익 지시 △수사 정보 등 기밀 누설 △공보관실 운영비 유용 등 크게 4가지 혐의에 관여한 것으로 봤다.

구체적으로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도입 등에 청와대 협조를 얻기 위해 당시 정부가 민감해하던 여러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 조사 결과, 그는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과 관련해 2012년 대법원이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자, 청와대의 입장을 반영해 재상고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등 재판을 지연하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양 전 대법원장은 특히 법관 재외공관 파견을 확대하기 위해 외교부를 설득할 목적으로 강제징용 사건을 활용(재판개입)하도록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그는 이처럼 자신의 숙원사업에 대한 정부 협조를 얻기 위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등에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 전 대법원장은 또 헌법재판소를 견제할 목적으로 헌재 파견 판사를 통해 헌재가 민감해하는 사건에 대한 평의 내용, 내부동향 등을 수집·보고·전달한 혐의도 받는다.

특히 2014년 옛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재판에 개입해, 당시 의원직 상실 여부를 판단할 권한이 헌재가 아닌 대법원에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알리려 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또 2016년 '매립지 귀속 분쟁 사건'이 대법원과 헌재에 동시 계류된 상황에서, 해당 사건을 헌재보다 먼저 선고하는 방안을 검토해 주심대법관들에게 보고하도록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받는 박병대(왼쪽), 고영한 전 대법관

양 전 대법원장은 법관들을 사찰해 인사 불이익을 준 이른바 '블랙리스트' 문건 작성에도 관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당시 사법부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31명의 법관을 '물의 야기 법관'으로 규정, 이들에 대한 문책성 인사 조치를 검토한 혐의를 받는다.

나아가 '국제인권법연구회', '이판사판야단법석 카페' 등 당시 사법정책에 반대 입장을 보인 단체에 대한 압박도 시도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또 '정운호 게이트', '부산 법조비리 사건' 등 당시 법관들이 피의자로 연루된 사건이 모든 법관들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해당 사건을 은폐 시도하거나 수사보고서 등 검찰 내부 문건을 입수·보고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또 2014년부터 2015년까지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3억5000만원을 인출해 전국 법원장 등에게 격려금으로 지급해 국고를 손실한 혐의도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검찰은 위에 열거한 의혹들에 당시 법원행정처장과 법원행정처 차장도 함께 관여한 것으로 보고 이날 박·고 전 대법관을 기소하고, 임종헌(61)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추가기소했다.

검찰은 조만간 관련 전·현직 법관들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대법원에 해당 비위사실을 통보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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