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으로 꽃핀 '희극시대'…"너의 잘못이 아냐"

역대 코미디영화 최고 흥행
혐오·조롱 버리고 차별화
"루저들 위안하는 코미디"
잘 살고 못 살고는 운때에…
"밑바탕엔 한국적 평등주의"
"희극의 가치, 통념 비틀기"

영화 '극한직업'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개봉 보름 만에 1천만 관객을 넘긴 데 이어 역대 코미디 영화 최고 흥행 기록까지 갈아치운 화제작 '극한직업'. 사회 통념을 비트는 희극의 본질에 충실했다는 데서 이 영화 흥행 동력을 찾는 움직임이 나온다.

11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개봉한 '극한직업'은 전날에만 관객 65만 7240명을 보태며 누적관객수 1283만 3254명을 찍었다. 이는 '7번방의 선물'(누적관객수 1281만 1435명)을 넘어선 역대 코미디 영화 최고 흥행 신기록이다.

'극한직업'은 극중 '김여사' 에피소드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지난 10여년간 팽배했던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조롱 섞인 코미디물과는 궤를 달리 한다.

문화비평가 이택광(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영화 '극한직업'은 젠더 감수성에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는데, 대표적으로 이하늬씨 캐릭터를 꼽을 수 있다"며 "전작 '타짜-신의 손'에서 보여줬던 섹시 콘셉트와 같은 전형적인 여배우 활용법은 이 영화에서 눈에 띄지 않는다"고 호평했다.

이 교수는 '극한직업'을 루저들 이야기로 봤다. 그는 "한국에서 루저가 스스로 패러디하고 풍자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극한직업'은 그 모습을 희극적으로 보여준 덕에 한국적 코드를 건드렸다"며 "결국 '극한직업'은 루저를 위안하는 코미디라는 점에서 장르는 다르지만 '보헤미안 랩소디' 흥행 코드와도 연결된다"고 진단했다.

'극한직업'에는 한국적 평등주의가 녹아 있다는 것이 이 교수 분석이다.

"한국적 평등주의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에서도 드러난다. 자신이 노력해서 뭔가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잘 살고 못 살고는 운에 달려 있다는 인식이 한국적 평등주의다."

그는 "한국적 평등주의가 나쁘게 나타나면 역사적 허무주의로, 좋게 나타나면 영화 '극한직업' 메시지처럼 드러난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영화에서 형사들은 열심히 하지만 일이 잘 안 풀린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능력은 있지만 운때가 맞지 않았다는 것이 이야기 마지막에 드러나잖나. 이 영화에는 그러한 메시지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결과적으로 이 코미디 영화에 깔려 있는 철학은 한국적 평등주의다."


◇ "좋은 희극엔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윤리적 웃음' 녹아 있다"

영화 '극한직업'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실제로 이 영화 속 마형사(진선규)는 우연한 기회에 뛰어난 요리 실력을 발견하고, 장사할 생각이 전혀 없던 주인공들이 위장 개업한 통닭집은 대성공을 거둔다. 급기야 뜻하지 않게 시작한 장사로 사건까지 해결하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 줄거리다.

이 교수는 "그것이 코미디가 지닌 미덕인데, 본인들 의지와 상관 없이 세상 일이 풀린다는 메시지는 상당한 위안을 준다"며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 입장에서는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 건 내 능력 문제가 아니라 운의 문제다' '운명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앙리 베르그송(프랑스 철학자·1859~1941)이 말했듯이, 사람이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고 기계처럼 행동할 때 사람들은 웃기 마련"이라며 "코미디·희극의 가치는 정상이라고 인정돼 왔던 것들, 즉 사회 통념을 비트는 데 있다"고 역설했다.

"자유의지를 박탈당하는 순간의 경험을 희극이 (간접적으로) 주는 것이다. 한국 같은 경우 그것이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다' '결국 운명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비극적 요소와 결합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극한직업'에서처럼 본인이 원하지 않았던 결과로 흘러가는 데서 우리는 웃음을 얻는 것이다. 결국 희극의 목적은 정상적 규범에 대한 비틀기라고 볼 수 있다."

현대사 안에서 군사독재정권 등 오랜 권위주의 시대를 겪은 우리는 희극이 지닌 가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일단 정치인들 같은 경우 안 웃잖나"라는 말로 이 교수는 그러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꼬집었다.

"희극적 요소가 들어가는 순간 자기를 놀리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극한직업'은 흥미롭다. 영화 속 소상공인·자영업자 이야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공감했다.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게 뭐냐' '소상공인을 우습게 보냐'고 기분 나빠할 수도 있는데, 관객들은 자기 운명이 될 수도 있는 장면 장면을 보면서 웃고 있다."

이 교수는 "이는 진지한 영웅주의를 표방해 온 기존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부분"이라며 "희극은 관객 자신이 여유가 없다면 즐기기 불가능하다. 희극은 교훈을 품고 있는데, 그 교훈은 윤리적"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다. 이는 우리가 결정해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무엇을 해봐도 안 되는, 절망의 바닥을 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걱정과 마주한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웃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사람들을 위로하는 '극한직업'과 비슷한 영화들이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듯 우리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윤리적인 웃음' '웃음의 윤리' 같은 것들이 좋은 희극에는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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