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SKY 캐슬' 종영 인터뷰 때 만난 최원영은, 웬만해서는 큰소리를 내지 않는 시종일관 차분한 황치영 교수를 닮아 있었다. 자기가 연기한 캐릭터와 말투만 비슷한 게 아니었다. 'SKY 캐슬'이란 작품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깊고 거시적인 이야기를 누구보다 자세히 풀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지상파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신드롬급 인기를 누린 드라마에 출연해 어느 때보다 큰 사랑을 받고 있을 텐데도 최원영은 덤덤해 보였다. "드라마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저도) 굉장히 과분하게 수혜자죠. 큰 사랑을 받고 있고요"라는 담백한 답에서 알 수 있듯.
◇ 전 연령대가 '반응'한 드라마 'SKY 캐슬'
'SKY 캐슬'의 인기는 딱히 부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화제성이든 시청률이든 브랜드 평판이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든 수치화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지표에서 줄줄이 1위를 차지했다. 쉽게 깨질 것 같지 않았던 비지상파 20%대 시청률을 3번(18회, 19회, 20회)이나 기록한 것은, 이 작품을 향한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높은 시청률에 크게 동요되지 않았다고. 최원영은 "거기에 크게 동요되거나 붐업된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촬영할 때 초지일관 차분하게 했다. 들뜬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연기에) 충실하기 위해서 애썼다"면서 "가끔 체감하는 건, 좋게 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지인들과 팬분들이 보낸 커피차가 현장에 많이 온 것 정도?"라고 말했다.
물론 드라마 인기를 실감하긴 했다. 너무 잘 보고 있다, 다음 회는 어떻게 되나 등의 연락을 꽤 자주 받았다. 하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서 최원영의 아내 심이영까지 메시지 세례를 받아야 했다. '다음에 어떻게 된대?', '집에 대본 없어?' 등등. 최원영 역시 "이렇게 전체가 함께 얘기하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고 수긍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재미 삼아 한 말이 대단한 복선처럼 여겨지는 경험도 했다. 황치영이 불구덩이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발언한 게 널리 퍼지면서, 악인으로 흑화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 것이다.
중반 이후 제기된 진진희(오나라 분)와의 불륜 가능성에 대해서는 본인도 들었다며 "오나라 씨가 종방연 때 나중에 둘이 '걱정 멜로'(격정 멜로 아님) 하나 찍자고 하더라. 걱정 멜로"라며 웃었다. 이어, 두 사람은 '돌아와요 아저씨'란 드라마에 같이 출연한 경험이 있는 사이라고 부연했다.
최원영은 시청자들의 추측에 관해 "관심의 척도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사랑해주시고 그만큼 집중해서 봐 주시는 거니까 그걸 나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 웬만하면 한 번에 촬영을 마친 베테랑 배우들의 힘
'SKY 캐슬'은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를 남겼다. 후반부로 갈수록 무겁고 진지해지는 분위기 속에서도 눈길을 사로잡은 장면이 바로 '아갈대첩'이었다. 'SKY 캐슬' 사람들이 모여 혜나 죽음의 용의자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에선, 서로의 결백을 주장하느라 험한 말이 오갔고 말 그대로 아사리판이 펼쳐졌다. 초반 'SKY 캐슬'에서 볼 수 있었던 블랙코미디적 분위기가 극대화된 부분이었다.
당치 황치영 역의 최원영은 소파 위로 올라갔다. 혹시 다른 사람들과 섞이고 싶어서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한 것이냐고 묻자 최원영은 "제가 한 거다. 대본에 없었다"고 답했다.
최원영은 "원래는 이수임이 소리 지르고 '어떻게 이 사람들이 이럴 수 있어? 여보, 나가자' 하고 데리고 나가는 게 끝인데 강준상(정준호 분), 차민혁(김병철 분)이 제 앞으로 쓰러지더라. 어? 싶었다. (거기에) 발 담그고 싶지 않더라. 약간 정신없는 상황이니까 (나름대로) 피한다고 한 게 (소파에)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위에서 보는데 참 가관인 거죠. 그러면서 제가 혼잣말 식으로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데 이게 무슨!'이라고 해요. 그 말이 그냥 즉흥적으로 나왔는데 방송에 써 주셨더라고요. 그 말은 대본엔 없어요. 이 사람들('SKY 캐슬' 가족들)한테 한 말이기도 하고 저한테 한 말이기도 했어요. 이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건 아니지만, 나 스스로에겐 할 수 있는 말이고 (동시에) 이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 같아서 그 말이 나왔어요."
"서로에 대해 신뢰가 구축돼 있었어요. 현장이 원활하게 잘 돌아갈 수 있는 게, 거기에 있었죠. 뭔가 실수들이 없어요, 진짜. 어느 정도 흘러갔을 때는 인물이 가진 성향, 스타일 다 아니까 '어, 왔어?' '준비할게요' 하고 대충 리허설 동선 체크하고 슛하면 한 번에 끝!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이상 테이크가 많이 간 적이 없어요. 모든 장면이 거의 한 번에 끝이었어요. 경합과 경쟁의 느낌보다는, 정말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거기에 있는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연기했어요. 그건 기분 좋은 일이고, 저는 많은 선배들 보고 느낄 수 있었고, 연기적으로 여러모로 도움 되고 좋았던 현장이었어요."
최원영은 배우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을 조재윤과 같이 만들기도 했다. 이 방이 만들어진 것도 '아갈대첩' 있던 날이었다. 염정아, 정준호, 이태란, 최원영, 윤세아, 김병철, 오나라, 조재윤에 김주영 역의 김서형까지 총 9명이 모였다. 대화방 개설을 주도한 걸 보니 '인싸'(insider, 인기인을 이르는 말) 아니냐고 묻자 최원영은 "아, 그걸 인싸라고 해요?"라고 되물었다. 배우들은 이 방에서 자기가 본 재밌는 게시물을 공유한다고.
◇ 'SKY 캐슬'은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최원영은 'SKY 캐슬'이 인간의 잣대와 속성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바라봤다. '아, 저렇게까지 해서 서울의대 보내야 해?'라는 반발과 '그래도 의사 되면 저렇게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겠지' 하는 동경을 모두 준다면서.
"'엘리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특권 의식을 갖고 있잖아요. 외국에서는 그런 걸 엄청 이상하게 봐요. (엘리트가) 완전히 집단화된 나라, 특권 의식으로 뭉쳐있는 엘리트 공화국이라면서요. 그 카르텔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되게 오래 걸리더라도 소시민들의 인식이 확산해야 한다고 봐요. 예를 들어 공무원이나 정치하는 분들은 나라에서 녹을 받고 일한다는 도덕적 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일부는 특권층이 된 것처럼 하니까 (사람들도) 편견을 갖는 거죠. 그런 것들을 없애야 하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준호 형이 종방연 때 말씀하신 것처럼 살면서 이런 작품 만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한 기여는 되게 미비했지만 함께 'SKY 캐슬'이란 성안에 입주해 있다는 것 자체가 제 기억 속에 있기 때문에 뿌듯하고 감사한 부분도 많아요. 이런 경험을 했으니 다음 작품을 할 때 좋은 자양분,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해요. 일희일비하지 말고 앞으로 계속 가야죠."
"즐거움을 드리려고 한 건 아니고 그런 걸 좋아해요. 일부러 튀어 보이려고 입진 않아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입는 거긴 한데 제가 가진 옷이나 소품들이 조금 남들이 보기에 난해하고 튀어 보이는 게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제 즐거움이죠! 자기 멋이고, 자기 맛이죠. 남자가 정장 입으면 왜 꼭 구두를 신어야 하지? 했어요. 아마 제가 정장 입고 운동화 거의 처음 신은 사람일 거예요. 그랬을 때 사람들이 엄청 욕했어요. 무슨 정장 입고 운동화 신냐고. 그 당시에는 새로운 모습이 더 이상해 보였겠죠. 제가 고등학교 땐 여름에도 샌들이 없었고, 운동화도 검은색 흰색만 있었어요. 학교에 맨발에 스포츠 샌들 신고 가면 사람들이 기겁했어요. 저런 신발을 어떻게 신고 다닐 수 있냐면서요. 고착화되어 있는 거죠, 사람들 의식이. 이해는 되지만 전 아랑곳하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난해한 취향을 좋아해요. (본인이 입은 조끼를 보여주며) 이 조끼도 작업복 같은데, 이걸 입고 정장 수트를 입고 싶다는 생각에 그렇게 산 거예요. 그냥 그러고 싶은 거죠. 제가 옷도 수선해 입고 바느질도 직접 해요. (종방연 때 옷은) 제 생일날에 저한테 선물하고 싶어서 샀어요. 사려고 1년간 돈 모았어요. 예전에 미술 공부할 때도 키치한 스타일을 좋아했어요. 어울리지 않는 조합 붙여놓은 게 취향이었어요. 연기도 역설적인 거 좋아해요. 재미난 상황인데 (사실은) 울고 있는 것?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로베르토 베니니가 잡혀갈 때 웃으면서 가지만 너무 슬프잖아요. 아이는 웃고요. 전 그걸 매번 봐도 매번 울어요. 약간 그런 느낌인 거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