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은 기존 'SKY 캐슬' 사람들과는 다르다. 다분히 목표지향적이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데다, 때로 인간미까지 지운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인 한서진(염정아 분) 가족과는 딴판이다.
이렇다 할 사교육 없이 명문 신아고에 수석 입학한 우주나, 의사 사이에서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의 준말로, 명문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할 때 쓰이는 말)인 지방의대를 나왔으나 새로 생긴 척추관절센터장이 되는 황치영, 아이의 만족도와 건강을 우선시하는 주관을 가진 이수임 모두 기존의 체제를 흔든다.
남편, 아내가 할 일이 따로 나뉘어 있지 않고, 탈권위적이며 수평적인 가정. 사랑과 배려가 넘치며,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우주네 집이 보여준 모습은 이수임이 쓰는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상' 그 자체였다.
하지만 'SKY 캐슬'을 보는 시청자들이 모두 황치영-이수임-황우주에 이입하고 응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가장 적극적으로 옳은 소리를 하고, 아이들이 원치 않는 독서 토론 모임 '옴파로스' 해체 투표를 끌어내는 등 공고한 SKY 캐슬에 균열을 낸 이수임은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현탁 감독이 "굉장히 고통스러웠던 부분 중 하나"라고 언급했듯, 시청자들의 이런 반응은 제작진도 출연하는 배우들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드라마 종영을 이틀 앞둔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최원영을 만났다.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역할을 맡은 그는, 이처럼 선인 아닌 악인 캐릭터에 쏟아지는 열광을 어떻게 봤을까. 그러자 그는 "보시는 분들이 느낀 게 정확한 지점이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 분량과 비중은 중요치 않았던 작품 'SKY 캐슬'
'SKY 캐슬'은 염정아, 이태란, 윤세아, 오나라, 김서형 5인의 여성이 화면을 가득 채운 메인 포스터만으로 짐작할 수 있듯, '여성'의 이야기였다. 사교육과 입시를 소재로 하기에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로서의 모습이 집중 조명되긴 했으나, 주인공으로 극을 주도한 것은 분명 '여성'이었다. 극중 남편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았다.
'SKY 캐슬' 합류 배경에 관해 묻자 최원영은 "어떤 포지션이든 제 역할이 있으니, 충실히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본다. 기개를 더 펼치면서 플레이하고 싶은 욕심이 충만할 때는 그런 작품을 찾아서 들어가면 된다"는 현답을 내놨다.
이어, "공격수여도 수비를 볼 수 있고, 수비수가 달려나가서 골을 넣기도 하지 않나. 똑같은 거라고 본다. 내 포지션이 여기면 내 맡은 바 임무를 다하면 되는데, 그 경기가 너무 흥미롭다면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꼭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그런 강박관념만 버리면, 욕심을 내려놓으면 돼요. 작품 전체의 중심과 틀이 더 중요한 거니까요.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우리 집이 분명히 존재해야 해요.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 중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있으니까요. (그걸) 작위적이지 않고 전형적이지 않게 풀어내는 게 필요했죠. 이 사람들(우주네 집) 이야기를 많이 내세웠다면 재미없었겠죠, 사실은. 시각적으로는 좀 약해 보이더라도, 굉장히 중요한 입장에 있었어요. 플레이하는 연기자 측면에선 한 켠에서 아쉬움이 생길 만한 부분이긴 하죠. 같은 연기자인데 (더 표출하고 싶은) 욕망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속상하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웃음)"
◇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던 황치영, 실제 싱크로율은
황치영은 보육원에서 자란 흙수저지만 책값을 벌기 위해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성실하며, 머리도 좋아 의대에 진학해 신경외과 전문의가 된 자수성가의 표본이었다. 가장 강력한 센터장 후보였던 야망가 강준상(정준호 분)을 밀어내고 센터장이 되었지만, 위계질서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후배들과도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애썼다.
수면 부족으로 큰 실수를 저지른 인턴을 꾸짖기보다, 애초에 거의 잘 수 없는 인턴 수련 과정을 문제 삼는, '구조'의 결함을 짚어내는 인물. 거기다 아내와 늘 편안한 태도로 대화를 나누고 집안일을 공동 분담하며, 아들 우주에게도 공부하라고 들들 볶지 않았다. 정말 저런 사람이 실재하긴 할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원영은 "황치영 같은 부모님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본다. 대다수 부모님이 저럴 거라고 생각한다. (기본 틀은) 황치영인데 아이들에게 큰소리치는 면이 있다거나(차민혁), 자기의 사회적인 명예를 중요시하는(강준상) 사람이 있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최원영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황치영은) 가사에도 함께하는 분위기이지 않나. 관계와 위치에 따라 자기 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같이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전 그런 게 당연히 합리적인 의식이라고 본다. 설거지, 청소, 빨래. 이런 것들이 아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 안 한다"고 밝혔다.
◇ 악인에 이입하는 시청자들… 최원영의 생각은
'SKY 캐슬'은 얼핏 보면 선악 구도가 선명했다. 시어머니에게 며느리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로 똘똘 뭉친, 딸의 '서울의대 합격'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서진은 기존의 드라마 문법에서 보면 분명한 악인이었다. 그가 '쓰앵님'이라며 추앙하는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 분)도 원하는 '결과'를 내는 것에만 몰두한다는 점에서 한서진과 비슷한 노선이었다.
반면, 도둑질하는 아이가 있으면 타이르고 꾸짖으며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하고, 아이들을 극단으로 몰아붙이는 사교육은 아이에게나 부모에게나 좋지 않다고 흔들림 없이 주장하는 이수임은 '선(善) 역'에 가까웠다.
이수임의 교육 철학과 가치관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이 더 많을 것 같지만, 예상과 달리 한서진의 솔직함이 더 좋다고 하는 반응이 꽤 많았다. '바른말'을 하긴 하지만, 자신이 틀렸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고 때로는 독선적인 모습을 보여 이수임에게 공감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악인을 향한 열광과 호응, 배우들은 예상했을까.
"보시는 분들이 느낀 게 정확한 지점이겠죠. 정확한 대본을 여러 번 본 게 아닌 상태에서 (드라마라는) 결과물로 감정선을 접하시니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하고 저희가 판단할 만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저희는 나름대로 어떤 설계를 가지고 갔죠. 작가님도 의중이 있으실 테고요. 인간이 가진 이중성의 양날이나 욕망, 사회-도덕적 윤리와 정서를 섞어서 메시지를 툭 던져주신달까요. 어떻게 보면 그걸 표현하는 연기자들이 너무 열연해 주시니까 거기에 홀리는 거죠. 설득력이 생기고요.
정아 누나, 서형 누나 연기를 보면 빨려 들어간달까요. 그러니 이해가 되는 거죠. (저희 역할 공감이) 안 됐다면 우리가 하는 표현이 조금 미숙하거나 미흡했을 수도 있는 거고요. 연기를 완벽하게, 기계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더구나 (황치영 역은) 감정을 드러낸 장면이 별로 없고요. 그래서 전 뭐 그렇게 크게 의식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현실적인 모습인 것 같기도 해요. 작가님께서 우리의 슬픈 속내나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혜나는 악인에 의한 희생양인 셈이죠. 김주영의 계획과 동기로 인해 살해된 거잖아요. 얼마나 억울하고 안타까워요. 되게 허무하고 공허하죠. 약한 자가 가질 수밖에 없는 마지막 비참한 최후니까요.
삶은 그렇게 연속돼 온 것 같아요. 거기(불공정)에 대해 저항하고 의식을 개선하려고 하다 보니까 세상이 발전하고 더불어 살려는 게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처음에 (이수임이) 책 쓰겠다고 할 때 노승혜(윤세아 분)가 에밀 졸라 얘기를 하잖아요. 이런 대사나 대화 속에 담긴 걸 다시 보면 더 재밌을 거예요. 지금은 충격적인 상황과 사건에 정신이 팔려서 빨려 들어가고 있지만, 한 가족으로 시선을 두고 하나하나 곱씹어서 보면 더 많은 게 이해되지 않을까요. 더 많은 놀라움과 끄덕임이 있을 거예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