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행위 숨기려 유서 불태운 중대장…法 "국가가 유족에 배상"

사망 25년 만에 배상 인정…"군 수사기관, 엄정조사 의무 더 크다"

가혹 행위를 견디지 못한 채 극단적 선택을 하고도 사실을 인정받지 못하던 군인의 유족들이 25년 만에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문혜정 부장판사)는 1994년 사망한 군인 권모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총 2억4천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육군 부사관으로 근무한 권씨는 1994년 부대 창고에서 스스로 총을 쏴 사망했다.

당시 군은 권씨가 가족사 등 개인적인 처지를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권씨 형의 요구로 재조사를 진행한 국방부 조사본부는 2016년 "직속 상관인 중대장으로부터 수시로 욕설과 구타, 모욕을 당한 끝에 유서를 남기고 사망했다"고 과거 조사 결과를 뒤집었다.


당시 권씨에게 가혹 행위를 한 중대장은 자신의 책임이 적힌 유서가 발견되자 이를 소각해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듬해 권씨가 순직했다고 인정받자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권씨 사망 당시 군 수사기관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당시 상당수의 소속 부대원들이 중대장의 가혹 행위 사실과 유서 발견 사실을 알고 있었고, 초기 수사보고서에서도 유서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 내용이 있음에도 군 수사기관이 중대장의 진술만을 근거로 사망 원인을 특정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군대는 엄격히 통제되고 격리된 집단으로 외부인의 접촉이 차단되고, 수사과정에도 이해관계인의 참여나 감시가 보장되기 힘들다"며 "또 국민은 헌법상 병역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복무하는 것이므로 군 수사기관은 더욱 철저히 사건 현장을 보존하고 내용과 원인에 대해 엄정한 조사를 해 실체를 규명할 의무가 일반 수사기관보다 더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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