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다' 김복동 할머니가 남긴 자신의 이야기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김복동' 등 여러 증언집·증언소설 남겨

지난달 돌아가신 김복동 할머니는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김복동',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등 여러 권의 책에 자신의 이야기를 남겼다.

김복동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일본군 위안부로, 참혹한 전쟁의 피해자로 살아온 본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알리고 싶어하셨다.

가족들이 부끄럽다고 말리며 그를 외면했지만, 할머니는 한 번도 자신의 인생을, 그리고 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지난해 출간된 김숨 작가의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현대문학)는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탄생했다.

열다섯 살에 군복 만드는 공장에 가는 줄 알고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다시 여러 나라에 끌려다니며 '위안부' 생활을 한 김복동 할머니.

해방을 맞은 후 고향에 돌아왔으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위안소'에서 맞은 주사 탓에 불임이 된 줄도 모르고 할머니는 험한 일을 하면서도 새벽마다 절을 찾아 아이를 갖게 해달라 끝없이 기도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니면서 죄책감 때문에 마음 놓고 남자를 사랑할 수 없어 37년 함께 산 남자가 있었음에도 평생 혼자 산 것만 같다고 말하는 김복동 할머니.

'위안부'로 농락당하고 훼손된 7년의 세월은 이후 그의 삶을 '혼자'인 것으로 만들었고, 그는 평생 외롭고 쓸쓸했다.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62살에 '위안부'로서의 삶을 고백했으나 할머니에게 찾아온 것은 가족들의 외면.

"내가 나를 찾으려고 하니까 큰언니가 말렸어. 조카들 생각해서라도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 그래도 나를 찾고 싶었어. 예순두 살에 나를 찾으려고 신고했어. 신고하고 큰언니가 발을 끊었어. 우리 아버지, 엄마 제사 지내주는 조카들까지. 나를 찾고, 더 쓸쓸해졌어."


국가가, 사회가, 우리가 침묵하고 개인의 소중한 삶이 폭력의 역사 속에 묻혀버리도록 방기한 결과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 않으니 가족마저 외면했던 것이다.

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 연구팀이 지난해 출간한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푸른역사)는 '위안부' 피해 여성의 생애사를 다루는 데 집중했다.

기존 증언집이 피해 상황 설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 책은 할머니들이 식민지 사회에서 어떤 생활을 하다가 끌려가게 되었는지부터 멀고 먼 귀환 여정, 그리고 귀환 후 생활을 상세히 담았다.

김복동 할머니 외에도 고 김순악·박영심·배봉기 할머니 등의 이야기가 실렸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이라는 증언집을 1993년부터 시리즈로 출간해왔다.

이후 개정하며 할머니들 삶의 궤적을 계속 업데이트했지만, 증언 본문은 2001년 초판대로 유지했다.

'김복동'(북코리아)는 이옥선, 이용수, 강일출, 길원옥 할머니로 이어지는 자전적 에세이 '리멤버 허'(Remember Her) 시리즈의 첫 권으로 출간됐다.

권주리애 전기작가가 할머니를 인터뷰한 글을 토대로, 정대협의 자료와 증언집을 참고로 구성했다.

주제가 무거워 전체적인 글의 톤을 밝게 했고, 분량의 절반은 할머니의 사진과 연관되는 이미지로 구성했다.

독자와의 친근감을 주기 위해 우리 할머니같이 생활하시는 일상다반사를 그려 독자에게 가깝게 다가갔고, 다섯 분 할머니들 모두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여성 인권운동을 한 시기를 부각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위안소에 처음 끌려갔을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평일에는 15명쯤, 토·일요일에는 셀 수가 없다. 너무 많아서, 한 50명쯤 됐을기라. 씻을 시간도 없이 그렇게 찢기고 패이고, 살점 뜯겨진 채 짐승만도 못한 삶을 견뎌냈다"고 말했다.

현대문학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서평에서 "이 책들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아 가족마저 외면했던 아픔을 이제라도 공감하고, 늦었지만 이들이 느낄 수 있을 살아 있음의 기쁨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살아 있는 목소리로 들려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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