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개 여성·인권단체 등으로 구성된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선고 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동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입법 취지를 반영한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앞서 서울고법 형사12부(홍동기 부장판사)는 이날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공대위는 항소심 판결을 두고 "위력에 대해 좁게 해석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판단 기준으로 처벌 공백이 만연하던 '우월적 지위', '업무상 위력' 성폭력 사건에 대해 그 특성을 적확히 파악해 판단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위력은 존재하나 행사되지 않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린 1심 재판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자에 대한 심각한 2차 피해를 일으키고, 수많은 여성의 공분을 초래한 데 대해 사법부가 겸허히 성찰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공대위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유무형의 영향력으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고 성적 침해를 저지르는 것을 더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며 "피해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언론을 통해 고발하지 않아도 법적·사회적 보호를 받도록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사법부 역할만으로 지독한 가해자 중심사회에서, 위력에 사로잡힌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우리 사회 전체가 가해자 중심사회, 위력에 사로잡힌 구조와 문화에 대해 질문하고 '미투'에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대위 활동가들은 그간 주장해왔던 내용이 대부분 법원에서 인정된 데 대해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오늘처럼 기쁜 날이 없었다"며 "(이날 판결은) 계란으로 바위를 깬 격"이라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기자회견 도중 수차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기자회견 진행을 맡은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의 선창에 맞춰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안희정은 유죄다' 등 구호를 외쳤다.
여성학자 권김현영 씨는 "이번 판결을 통해 권력을 이용한 성적 착취가 법적으로 금지돼야 하며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법적으로 유죄라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생각한다"며 "상식의 편에 선 재판부를 존중한다"고 평가했다.
공대위는 이날 오후 6시에도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집회를 열어 이번 판결을 환영하고 1심 판결을 규탄했다.
참가자들은 이날 집회 사회자가 판결 요지를 설명하자 수차례 환호하고, '안희정은 유죄다', '우리가 무너뜨린다'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자리를 채웠다.
이날 집회에는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성폭력 혐의를 폭로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도 참석해 소회를 말했다.
김 대표는 "나도 꽃뱀이라는 공격을 받으며 숨어있었지만, (이 전 감독이) 1심에서 6년의 실형을 받은 뒤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안희정 지사 사건의 생존자(김지은씨)도 힘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폭로를 지지해준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다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김 대표는 또 "부디 안희정 씨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여기서 멈추기를 바란다.
대법원까지 가서 변명을 늘어놓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며 상고를 포기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