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양정모 금메달에 흥분해 한체대 세웠다가…

영욕의 42년…한체대, 미투 앞 갈림길에 서다

사진=한체대 홈피 캡처
"동독과 같은 작은 국가도 금메달을 많이 따는데 대한민국은 왜 금메달을 못 따느냐?"(박정희 전 대통령)

"그들은 라이프니찌 대학과 같은 국립체육대학이 있어서 과학적인 훈련을 합니다."(정동구 코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레슬링)가 광복 이후 첫 금메달을 획득한 후,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로 선수단을 초청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립체육대학 설립을 지시했고, 그해 12월 30일 대통령령 제8322호에 따라 한국체육대학교(이하 한체대)가 설립됐다.

한체대는 이듬해 3월 19일 개교해 14개 종목 120명을 전원 체육특기자로 선발했다. 설립 목적은 심신이 조화를 이루는 전문체육인과 국위선양을 위한 우수선수 양성이었다.(-한국체육대학교 40년사 中)

체육계 미투 이후 정부가 엘리트체육 중심의 선수 육성 방식 전면 개편에 나서면서 '한국 엘리트체육의 산실'로 불리는 한체대도 갈림길에 섰다.

정부는 지난 25일 체육계 비리 근절 합동브리핑에서 체육계 비리가 성적지상주의에 기반을 둔 엘리트 중심의 선수 육성 시스템에 있다고 판단하고 민관 합동으로 '스포츠혁신위원회'(가칭)를 꾸려 개혁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 분리, 국가대표 합숙 최소화, 선수촌 개방, 소년체전 폐지, 체육특기자제도 전면 재검토 등을 방안으로 내놨다.

체육특성화대학인 한체대는 1977년 개교 이후 42년간 한국 엘리트체육의 최선봉에 섰다. 한체대 재학생·졸업생이 역대 동·하계 올림픽에서 따낸 메달은 113개.

한체대 출신 1호 올림픽 메달리스트 김진호(양궁)를 비롯, 심권호(레슬링), 이상화(빙상), 양학선(체조), 박상영(펜싱) 등 스타선수를 배출했다. 현재 일반학생 외에 체육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선수 960명(23개 종목)이 재학 중이다.

한국 엘리트체육 발전사라고 해도 무방한 한체대는 올림픽·아시아대회 같은 국제대회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뒀을 뿐만 아니라 프로종목에 비해 설움받는 비인기종목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빙상계 적폐 등 체육계 카르텔의 중심으로 낙인찍히며 일각에서는 '한체대 폐교'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2월 중 한체대 종합감사를 실시한다.

이런 가운데 한체대 출신 체육인들은 "전명규 한체대 교수가 정점에 있는 빙상계 비리로 인해 한체대 체육인과 체육계 전체가 매도당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한 학생선수는 "조재범 사건 이후 주변에서 '너희도 당한 것 아니냐', '엘리트 선수는 다 그렇게 훈련하느냐'고 묻는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고 운동할 맛이 안 난다"고 토로했다.

한 체육인은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체육계에서 많은 노력을 해왔고. 지금은 과도기다. 체육계를 향한 비난이 그간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 같아 속상하다"며 "종목의 특성이나 문화에 따라 변화의 속도에 차이가 날 수 있다. 빙상계는 다른 종목에 비해 높은 성과를 낸만큼 과거의 관습에서 탈피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다른 체육인은 체육특기자제도 전면 재검토에 대해 "엘리트 선수들이 좋은 경기력을 발휘해야 생활체육도 활성화된다"며 "체육특기자제도를 유지하되 이를 통해 얻는 이익을 엘리트 체육뿐만 아니라 사회체육에도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엘리트 중심의 스포츠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개혁 방향에 대해서는 동조했다.

체육인들은 "위기는 곧 기회다. 체육계가 자숙하고 반성해서 위기를 성장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승리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체육을 통해 인성 발달을 추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 동서냉전 체제 속에서 '체력은 국력'이라는 모토 아래 설립된 한체대. 체육을 체제 우월성 과시와 국민정서 통합 수단으로 이용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한체대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화의 물결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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