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할머니 별세…운구행렬, 일본대사관 지난다(종합)

위안부 피해자에서 인권 운동가로 살아온 93년의 일기
"마지막 소원은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황진환기자
여성인권운동가이자 위안부 피해자였던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

지난 12일부터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있던 김 할머니는 지난 28일 오후 10시 41분쯤 별세했다.

김 할머니는 지난 2017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여러 차례 수술까지 받았지만, 암이 복막 등으로 퍼지면서 몸이 쇠약한 상태였다.


딸만 여섯인 집에 넷째로 태어난 김 할머니가 위안소로 끌려간 건 고작 만 14살이던 1940년이었다.

"군복 만드는 공장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속고, "딸을 내놓지 않으면 동네에서 살지 못하게 하겠다"하는 말에 놀라 집을 떠난 길은 그대로 중국 광동, 홍콩,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와 자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에서의 고초로 이어졌다.

1947년 귀국한 김 할머니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신고전화가 개통된 이듬해인 1992년 자신의 피해 사실을 처음 고백하고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처음으로 파견을 나가 피해 사실을 증언했고 이후로도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 증언과 여성‧시민단체와의 만남을 이어갔다.

특히 2012년엔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피해자 쉼터에서 함께 살던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만들었다.

지난해 9월엔 암 투병 중에도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요구하면서 외교부 앞에 직접 나왔다.

이때 김 할머니가 꼿꼿한 목소리도 한 말이 "방에 누워 있다가 속이 상해 죽겠어서 나왔다", "우리가 위로금 받으려 여태 싸운 줄 아냐, 1000억을 줘도 못 받는다"였다.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는 최근 CBS노컷뉴스와 병실 앞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김 할머니를 '세계무력분쟁지역 성폭력 생존자들의 영웅'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윤 대표는 김 할머니가 입원 전까지 "아베에게 사죄를 받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된다.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열려 29일 오전 11시부터 조문객들을 맞는다.

발인인 2월 1일엔 서울광장과 일본대사관을 거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거친 뒤 천안 망향의동산에 장지가 마련될 예정이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23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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