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NYT)가 25일(현지시간) 페이스북의 메신저 통합 계획을 보도한 이후 반독점 소송 전문 변호사들은 "이번 조치가 페이스북에 대한 반독점 소송을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페이스북 이번 통합 계획은 3가지 서비스가 단일 메시징 서비스로 병합되는 것이 아닌 백엔드(back-end) 간 기본 메시징 인프라가 통합되어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든 3가지 서비스에서 전송된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 과정에서 종단간 암호화(end-2-end)로 보안성이 한층 강화된다.
하지만 마크 로텐버그 전자상거래정보센터(EPIC) 의장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의 계획은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고, 캘리포니아 지역구의 로 칸나 하원의원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놨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이같은 결과는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인수할 때 훨씬 더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만 했던 이유"라며 "명확한 반독점 조사가 이뤄졌어야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페이스북은 사용자 데이터 무단 유출과 가짜뉴스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미국의회 청문회까지 불려나와야 했다. 지난해 11월 영국에서 열린 국제 국회의원 청문회에서 캐나다 찰리 앵거스 대표는 "반독점법이 페이스북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캐나다 하원 정보·프라이버시·윤리적 접근에 관한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인 앵거스는 "우리가 뭔가를 규제하는 것은 어떤 문제로 인한 증상이 있다는 것"이라며 "가장 좋은 방법은 반독점 규제"라고 강조했다.
미시간대 대니얼 크레인 법대 교수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반독점 규제는 실제 페이스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페이스북이 어떻게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운영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 반독점의 주제는 아니다"며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소유할 수 있었느냐이지 각 서비스의 백엔드(back-end)를 기술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이슈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페이스북은 2012년 인스타그램을 약 10억달러에 인수했고, 2년 후에는 왓츠앱을 190억달러에 인수하며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공룡으로 몸집을 불렸다. 소셜미디어 시장이 성장하고 새로운 정보기술이 등장하면서 개인정보보호 등 관련 규제가 뒤늦게 정비되고 작동하기까지 페이스북은 규제당국의 감시를 대부분 피해왔다.
지난해 미 대선에 개입한 러시아의 가짜뉴스 유통 창구 논란,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에 의한 사상 초유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하기 전까지 페이스북의 위험한 독주는 계속됐다.
페이스북은 과거에도 자사의 각 플랫폼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시기마다 조금씩 다른 입장을 내놨다.
2012년 인스타그램 인수 당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양사는 인스타그램을 독립적인 서비스로 운영(Instagram as an independent service)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발표했지만, 2014년 연방통신위원회(FTC)에 제출한 왓츠앱 인수 관련 문서에는 "왓츠앱을 별도의 회사로 운영(operate as a separate company)하고 개인정보보호 및 보안 약속을 지킬 것"이라며 다소 유연한 입장을 내놨다.
페이스북은 이같은 지적에 "이번 서비스 통합은 빠르고 간단하며 신뢰할 수 있는 개인 메시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구글은 더 많은 메시징 제품을 암호화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친구와 가족에게 더 쉽게 연락 할 수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며 "우리도 이같은 과정을 시작할 때 수 많은 토론과 논쟁이 생길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은 2020년까지 메신저 기능 통합을 완료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랫동안 사용자 데이터를 이용한 '플랫폼 장사' 논란이 꾸준히 이어졌다. 힙스터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인스타그램과 뛰어난 보안성으로 왓츠앱이 승승장구하는 반면 사용자 고령화와 성장 둔화,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과 유출, 광고 노출 증가로 이탈층이 늘면서 고민이 깊어진 페이스북은 사용자층 고령화와 성장 둔화로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혁신보다는 광고에 집중했고, 스냅챗, 틱톡 등 잘 나가는 플랫폼의 서비스를 베끼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한 안전한 채팅 서비스라며 내놓은 '페이스북 메신저 키즈'는 SNS 중독을 조장한다는 비난만 샀다.
페이스북이 인수 후 독립적인 경영을 이어왔던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은 최근 상업화 논란에 휩싸였다.
'힙스터'가 몰려 있는 인스타그램은 소셜 커머스 커뮤니티로 대폭 전환했고 '안전한 여론광장'으로 불리며 사용자가 15억 명에 달하는 왓츠앱에도 광고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매출의 98%가 광고에서 나오는 상황에서 이들 소셜미디어까지 광고 매출의 전진기기로 삼겠다는 의지였다.
실제 인스타그램과 왓츠앱, 페이스북 메신저의 메시징 기능이 통합되면 플랫폼별로 분산된 사용자 간 커뮤니케이션이 보다 쉽고 편해질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지만 이를 통해 25억 명에 이르는 사용자에게 뿌려지는 광고의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에 반발한 왓츠앱과 인스타그램 창업자들은 결국 회사를 떠났다.
페이스북의 가상현실(VR) 사업부문에 통합된 VR 기기 제조업체 오큘러스 전 CEO 겸 공동창업자인 브렌던 아이립이 짐을 쌌고 또다른 공동창업자 팔머 러키는 3년 전에 일찌감치 떠났다. 빈 자리는 페이스북 경영진들로 채워졌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저커버그가 페이스북 살리기에 골몰한 나머지 인스타그램과 왓츠앱까지 수렁에 끌어들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왓츠앱 공동창업자 브라이언 액턴은 지난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커버그와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가 메신저 계량화 수익모델 제안을 깡그리 무시하는가 하면 유럽연합(EU) 규제를 통과하는데 자신을 이용하기만 했다"며 싸잡아 비난하기도 했다.
기술과 정보 독점 문제가 비단 페이스북 뿐만은 아니다. 구글은 검색 엔진과 모바일 플랫폼을 이용해 지위를 남용했다며 유럽 규제당국으로부터 수 십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고 아마존 역시 세계 전자상거래 시장을 어떻게 점유할 수 있었는 지에 대해 추궁을 받고 있다.
애플 팀 쿡 CEO는 지난해 10월 브뤼셀에서 열린 개인정보보호 컨퍼런스에서 기업들이 엄청난 양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정부가 새로운 디지털 개인정보 보호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시사주간지 타임(TIME) 오피니언 기고문에서도 "소비자는 통제가 불가능한 사용자 프로필과 데이터 유출 위험에 놓여 있다"며 "스스로가 디지털 라이프 기록을 삭제할 수 있는 기능 도입은 물론 무분별한 개인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업에 대해 용인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애리조나대학의 버락 오르바흐 교수는 CNBC에 "현재의 반독점법은 19세기 산업혁명의 세기적 전환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은 새로운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다"며 "기업과 플랫폼의 빠른 진화를 고려할 때 반독점 규제 법에 상당한 손질이 불가피 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페이스북의 행보가 각 앱의 메시징 기능 연결이 끝이 아니라 거대한 통합과 독점으로 가는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는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를 막을 반독점 규제 법의 손질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