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대중의 기억 속 조재윤은 '악역 전문' 배우였다. 여러 작품에서 크고 작은 역을 다채롭게 소화했으나, 이른바 '잘된' 작품에서 악역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시작한 '도시경찰' 제작발표회 땐, 그가 지금까지 범인 역할만 10번 가까이 했다는 점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그만큼 선한 주인공과 대립하거나 전과가 있거나 악행을 저지르거나 조폭인 역할을 많이 맡았다. 드라마 '에덴의 동쪽' 애꾸, '드림' 갈치, '추적자' 박용식, '드라마스페셜-칠성호' 홍만식, '구가의 서' 마봉출, '라스트' 뱀눈, '구해줘' 조완태, '매드독' 박순정, '기름진 멜로' 오맹달, 영화 '아저씨' 장두식, '범죄도시' 황사장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드라마 '기황후'에선 황제를 살뜰히 보좌하는 어리바리한 내관인 줄 알았으나 후반부에 극을 좌우하는 흑막으로 드러났던 골타 역도 빼놓을 수 없다. 조재윤은 선함과 악함 양면을 모두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SKY 캐슬'에서는 '악역 전문'이라는 수식어와는 다소 동떨어진 우양우 역을 맡은 조재윤.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FNC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난 그에게 선한 역을 연기하는 기분이 어떤지 물었다. 처음에는 안 어울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젠 귀여워 보인다는 반응도 나온다며 웃었다.
◇ 처음엔 의사 역할 안 어울린다는 반응 많았지만…
'SKY 캐슬' 주요 배역 중 의사는 3명이다. 고고한 척하지만 출세길을 향한 야망이 크고 속물근성을 가진 강준상(정준호 분), 연구와 수술 양쪽에 강하면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성격의 황치영(최원영 분), 사수로 모시는 강준상에게 꼼짝 못 하지만 인턴에게는 불같은 선배인 우양우(조재윤 분)가 그 주인공이다.
드라마 초반엔 '조재윤이 의사를?'이라며 캐릭터와 잘 맞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나왔다. 사실 조재윤은 이전에도 '블러드' 우일남, '흉부외과' 황진철로 의사 역을 맡은 적이 있다. 다만 의로운 인물이 아니었을 뿐이다.
또, 본인이 허리 디스크를 경험했기에 더 실감 나게 연기할 수 있었다. 조재윤은 "감독님이 (제게) 물어볼 정도로 (제 경험이) 완전 반영됐다"라고 말했다.
"디스크 환자들은 못 움직여요. 숙이질 못하니까 세수할 때 다 젖어요. 보호대라고 하는 허리 벨트를 차는데 배우들은 차고 싶지 않아 해요. 그런데 (실제로는) 다 그걸 해요. 피주머니도 꼭 차고 있고요. 처음엔 감독님이 빼야 한다고, 보기가 안 좋다고 하셨는데 제가 해야 한다, 리얼하게 가자고 해서 피주머니 달고 나왔어요."
인간미가 느껴지고 사람들에게 유쾌함까지 줄 수 있는 역할을 맡은 소감은 어떨까. 조재윤은 "악역 전문이라고 하니까 (우양우 역이) '안 어울려', '어색해' 했는데 이게 참 드라마가 잘 되니까… 사람이 그렇지 않나. 보다 보면 예뻐지고 친근해지는 것처럼, 마지막에 와서는 '귀엽다', '어울린다' 그런 글도 있고 하더라"라고 웃었다.
◇ 하나님, 부처님, 모든 신께 감사하다고 한 이유
22.316%라는 시청률(닐슨코리아 유료방송 전국 가구 기준)로 비지상파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SKY 캐슬'의 인기는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다. 인기 드라마만 겪는다는 '스포일러 주의보'가 돌았고, 대본이 유출되는 악재도 있었다. 15회, 17회 예고편(네이버 TV, 1월 27일 오전 3시 기준)은 짤막한 영상임에도 조회수 100만을 넘겼다.
조재윤은 유현미 작가와 조현탁 감독 등 제작진에게 드라마 인기의 공을 돌렸다. 그는 "작가님한테 찬사를 보내야 한다. 대본이 되게 빨리 나온다"며 "'신의 저울', '각시탈' 등 ('SKY 캐슬'과는) 전혀 다른 걸 쓰던 분이 자기가 겪은 내용에 살을 붙인 거다. 가상의 이야기도 있지만 디테일도 풍부하고. 거기에 조현탁 감독님이 가진 섬세함이 합쳐져서 최고의 미장센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저도 (드라마의) 출연자이지만 이 드라마의 시청자이기도 하거든요. (대본이) 2부씩 나오고 마지막만 1부씩 나왔는데 배우 스태프들이 (대본받고 나면) 다 박수칩니다. '이거 뭐예요?', '작가님 왜 이래?' 안 재밌을 수가 없죠. 대본이 완벽한데…"
조재윤은 "왜 다 거짓말한다고 할까? 처음에는 몰랐다. (SKY 캐슬) 사람들은 웃고 있지만 그 안에는 슬픔과 아픔이 그득하다는 표현이 엔딩에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드라마를 조연으로도 많이 해 봤지만, 역시 좋은 드라마는 작가, 감독, 배우, 심지어 스태프들까지 합이 딱 맞는 것 같다. 이번 'SKY 캐슬'은 심지어 PPL까지도 자연스럽게 녹여낸 편"이라고 부연했다.
염정아, 이태란, 윤세아, 오나라, 김서형 등 여성 배우들이 전면에 나서 극을 이끄는 드라마이기에, 조재윤은 우양우 캐릭터 역시 중간에 사라질 줄 알았다고 말했다. 드라마 촬영 중간에도 종종 여행을 다녀왔다고 전하면서 "왜냐하면 씬이 없어서요"라고 웃는 그였다.
그는 "(중간에) 떠나보내는 캐릭터인 줄 알고 접근했는데 제가 빠지면 네 가족이 망하게 생겼더라"라며 "한 씬 두 씬밖에 안 나오지만 (드라마) 전체를 보는 눈이 커졌다"라고 밝혔다.
"'SKY 캐슬'은 촬영하는 내내 행복했어요. 대사가 어렵지 않아서 제가 대사 못 외우지만 않으면 NG 안 났거든요. 촬영감독님도 예술이셔서 기가 막힌 앵글 잡아주셨고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하늘님, 부처님 모든 신께 다 감사드려요. 제가 오대환, 김민재, 진선규 이런 배우들하고 친한데 '야, 우리가 배우가 돼서 스타라는 단어를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됐다는 게, 그 세상이 너무 감사하다'고 그랬어요. (웃음) 걸어 다닐 때 저를 알아보는 게 신기해요, 아직도.
'SKY 캐슬'이 진짜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느끼는 게, 이제는 어르신들까지도 저를 알아봐 주시니까 그런 부분에서 행운의 작품이죠. 아시겠지만 제 비중이 큰 것도 아니고, 매회 한두 번씩 나와서 치고 들어가는 역할인데도 불구하고 기뻐해 주시니까요."
그러면서 "염정아 씨에게도 인생작이겠지만 저는 'SKY 캐슬'은 김서형 누나의 인생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저도 다음 작품은 '조재윤의 인생작'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