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빴던 '사법농단' 수사 7개월

검찰, 압색영장 기각 등 고비 속에서 주요 피의자 구속으로 '물꼬'
양승태 前대법원장 구속으로 사법농단 수사 마무리 국면
검찰, 다음달 중순 기소 마치면 '공소유지'에 주력할듯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한형기자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면서 7개월 넘게 이어진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검찰은 최대 20일간의 구속기간 동안 보강수사를 한 뒤,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유지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 고비 많았지만 임종헌·양승태 구속으로 '물꼬'

(일러스트=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해 6월 사법농단 수사에 본격 착수하면서, 반년 넘게 4개의 특별수사부 전부와 수십 명의 검사를 파견 받는 등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수사에 사활을 걸어왔다.

전·현직 법관들을 상대로 하는 수사인 만큼, 검찰의 초반 압수수색 영장은 법원에서 번번이 기각됐다. 여론은 사법부에 사법개혁 의지가 정말 있는지 의구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검찰이 지난해 7월 임종헌(60) 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USB(이동식저장장치)를 압수하면서 수사에 물꼬가 트였다.

재판개입 의혹 등 8000개가 넘는 문서들, 100명이 넘는 법관들의 진술, 당시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오고간 이메일 등 검찰 캐비닛에 증거가 쌓여갔다.

결국 임 전 차장이 지난해 10월 구속되면서 수사는 전직 법원행정처장(대법관)으로까지 뻗어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연말 안에 수사를 마무리하려던 검찰 수사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

그즈음 검찰은 법률사무소 김앤장을 압수수색해 얻은 자료 등을 토대로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강제징용 사건에 직접 개입한 정황을 확인한다.

검찰조사 결과, 양 전 대법원장은 당시 일본 전범기업 측 대리인이었던 김앤장의 한모 변호사를 수차례 직접 만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당시 사법부에 비판적인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문건에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사인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직접적인 증거들 앞에서도 계속 혐의를 부인했고, 결국 24일 새벽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 "블랙리스트 없다"던 특조단…결국 수장까지 '구속' 수모

(사진=이한형 기자)
사법농단 사태는 2017년 3월 양승태사법부에 비판적이었던 법관과 법관모임을 당시 사법부가 사찰했다는 일명 '블랙리스트' 문건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시작됐다.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3차례에 걸쳐 자체조사를 벌여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블랙리스트 문건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지난해 5월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자체 조사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과 전화 통화도 한번 못하고, 대법관들도 서면조사에서 그친 것으로 드러나 부실 조사 논란이 일었다.

여론이 들끓자 결국 김명수 대법원장은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을 약속했고,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면서 7개월 넘는 검찰 수사는 종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검찰은 현재 양승태사법부 시절 통합진보당 사건을 '배당조작'했다는 의혹, 법관들을 사찰해 불이익을 줬다는 '블랙리스트' 의혹 등과 관련해 계속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기한이 만료되는 다음 달 중순쯤 양 전 대법원장을 재판에 넘길 방침이다.

공이 재판으로 넘어가면 치열한 법리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양 전 대법원장의 주 혐의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자체가 입증이 쉽지 않다.

또 양 전 대법원장이 이미 지난 3차례 검찰조사에서 27시간 동안 조사를 받으면서 조서검토에는 36시간을 쓰는 등, 조서열람에 많은 공을 들이며 검찰의 재판전략을 파악하기 위해 힘썼다.

실제로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소명할 부분은 재판과정에서 하겠다"며 벼르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검찰 역시 대법원 판례, 법리, 증거 등을 정리하며 재판에서 혐의 입증을 위한 작업에도 만전을 기할 전망이다.

한편, 검찰은 이르면 25일 양 전 대법원장을 검찰청사로 소환해 사법농단 막바지 수사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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