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초계기가 지난 23일 또다시 이어도 인근 해상에서 한국 해군 함정에 근접해 위협비행을 하면서 양국 간 긴장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지난해 12월 우리 해군 함정을 대상으로 저공·위협 비행을 실시해 우리 정부가 사과를 요청했지만 이달 18,22, 23일 세번에 걸쳐 같은 방식의 비행을 감행했다.
일본은 21일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 레이더 갈등에 대해 '진실규명이 될 것 같지 않으니 협의를 지속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밝혔는데, 이후 다시 위협비행을 감행함으로서 명백한 도발을 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그간 절제된 태도로 일본 측의 도발에 대응해 왔다. 그러나 23일 도발 이후 국방부는 "일본 초계기가 우리 해군 함정을 명확하게 식별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거리 약 540m, 고도 약 60~70m 저고도로 근접 위협비행을 한 것은 명백한 도발행위로 간주한다"며 일본을 강력히 규탄했다.
우리 정부가 향후 군사적 도발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지만 일본 측이 앞서 '협의를 지속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만큼 일본 측의 추가적인 대응은 없을 것으로 예상돼 외교적인 노력도 지속하기 힘든 상태다.
한 외교소식통은 "일본은 입을 닫아버렸고, 우리 정부는 이제서야 강경입장으로 선회했다"며 "대화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대놓고 대립각을 세워나갈 수도 없어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다보스 포럼 참석 계기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을 만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레이더 갈등 등 양국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하지만 이 역시 양국의 입장차를 확인하는데 그쳤다.
이 자리에서 강 장관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 즉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밝히면서, 일본 기업이 소송절차에 참여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절차적 권리를 누렸기 때문에 판결결과에 대해서도 승복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맞는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외교적 협의에 대한 일본의 요청을 신중하게 검토 중이며 이외 다른 일반적인 채널을 통한 협의에도 항상 열려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레이더 갈등이 정치쟁점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양국이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출구를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은 한일청구권 협정을 거론하며 해당 절차, 즉 외교적 협의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또 23일 근접비행 문제에 대해서도 "근접비행은 없었다고 한다"면서 한국 측의 당일 발표에 유감을 표시하는 동시에 냉정한 대응을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연이은 일본의 도발은 보수층 결집을 위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정치적 포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어서, 해결을 더욱 요원하게 하고 있다.
일본 산케이·후지TV가 지난 19~20일 실시한 1월 월례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47.9%로 전월대비 4.2%p 올랐다. 산케이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레이더 갈등으로 한국에 대한 비판여론이 커진데 영향을 받은 것이라 시사했다.
한일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에도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협상 장기화와 한일갈등이 맞물려 북핵 해결을 위한 공동전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 측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문제라면서, 양국 간 갈등 봉합은 이 문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봤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일본은 개인적 배상을 명령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가장 민감하다. 이에 대한 우리 입장을 내고 대책을 마련하라는 압박 차원에서 초계기 갈등을 이용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일 갈등을 풀어나가려면 양국 간 신뢰가 중요한데 (계속된 갈등으로) 이 신뢰가 바닥났고, 일본 내부 정치적으로도 초계기 문제에 있어서는 방치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형태는 다르지만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를 압박하기 위한 추가 갈등이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