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기자회견에서 전 교수는 자신이 연루된 각종 의혹을 부인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했다. 뿐만 아니라 메달, 경기력 향상, 효자종목 운운하며 체육계 적폐 청산 1순위로 지목받는 자신과 빙상연맹을 비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전 교수는 "1987년부터 2002년까지 15년간 국가대표 지도자로서 국제대회 메달을 따는데 조력하며 한국 빙상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왔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 "오늘 아침 기사로 접했지만 빙상연맹이 대한체육회에서 퇴출되지 않고 앞으로도 효자종목으로 남기를 바란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한국은 쇼트트랙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쇼트트랙은 겨울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92년 알베르빌 대회부터 2018년 평창 대회까지 금 21개 포함 42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좋은 지도자=메달리스트 많이 만드는 지도자'라는 인식 속에 전 교수는 승승장구했다. 15년 간의 국가대표 지도자 생활을 마감한 직후 한체대 교수로 부임했고, 빙상연맹에서 요직을 맡았다.
쇼트트랙이 겨울올림픽에서 따내는 메달 개수가 늘수록 전 교수의 권력은 막강해졌다. 해묵은 빙상계 파벌 싸움의 중심에 항상 전 교수가 있었지만 그의 자리는 끄덕없었다.
전 교수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와 남자 쇼트트랙 부진에 책임을 지고 부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평창 대회를 앞둔 2017년 3년 만에 연맹에 복귀했다. 당시 연맹이 밝힌 전 교수 재영입 이유는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
전 교수는 적폐 논란의 중심에 서며 지난해 4월 또다시 부회장직을 사퇴했다. 그러나 소위 전명규 사단으로 불리는 이들은 선수 폭력·성폭력 전력에도 불구하고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국제대회 성과가 비인간적인 행동의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이 뿌리 깊은 탓이다.
빙상계 곳곳에 국위선양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폭력과 성폭력으로 만든 금메달은 더 이상 우리나라 국격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의 용기 있는 폭로 이후, 외신들은 연일 스포츠강국 한국의 그늘에 대해 다루고 있다.
AP통신은 "한국은 올림픽의 성과를 국가의 자부심과 연결시킨다.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면 훈련과정의 문제점은 간과되기 일쑤다. 그러나 신세대 선수들로 인해 한국 체육계는 변화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서강대 정용철 교수의 말을 인용해 "아무도 올림픽 메달의 이면을 들여다 보려 하지 않았다. 올림픽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태극기가 올라가는 순간 모든 인권침해가 묻히고 잊혀졌다. 한국인 모두 체육계 일련의 범죄에 대한 공범(accomplice)이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