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ILO 비준 '빅딜' 논란 불씨 남을까

마음 급한 정부, 의욕적으로 빅딜 추진했지만 실패
당사자인 노사 양측 모두 패키지 처리 반대해
단기간 내 노사 합의는 쉽지 않아 논란 계속될 듯

정부가 수면 위로 끌어올렸던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간의 '빅딜설'이 노사 양측의 반대 속에 사실상 무산됐다.

하지만 두 사안 모두 노사 간 의견 차를 좁히기 쉽지 않은데도 정부는 2월 국회로 논의 시한을 못 박고 있어 갈등이 불거질 전망이다.

◇'빅딜 전도사' 홍남기, 경영계·노동계 반대에 밀려 빅딜 철회

탄력근로 확대와 ILO 협약 비준의 '빅딜설'을 공론화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평소에도 '빅딜'을 강조해왔다.

애초 이른바 '예산통'으로 꼽히는 홍 부총리는 정부 각 부처의 민원을 듣고 조정해야 하는 예산기획처에서 경제 관료의 길을 걸었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정부 부처 정책 전반을 조율하는 청와대 국무조정실장으로 일했다.

지난해 11월 부총리 임명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경제 영역에서도 경제부처 장관과 노동·경영자 단체 간 사회적 대화, 빅딜을 추진해나가겠다"고 강조하는가 하면, 올해 경제정책방향에서도 4대 빅딜 과제를 제시하는 등 '빅딜 전도사'의 면모를 보여왔다.


지난해 연말부터 정부와 여당 인사들이 간접적으로 거론하던 탄력근로제 확대-ILO 협약 비준 빅딜의 포문을 홍 부총리가 연 것이 우연이 아닌 셈이다.

결국 홍 부총리는 지난 14일 취임 후 처음으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찾은 자리에서 탄력근무제 확대와 ILO 협약 비준을 '동전의 양면'으로 비유하며 "필요하다면 빅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경사노위 문성현 위원장도 "탄력근로제와 ILO 비준 문제가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2월 임시국회까지는 매듭지어야 할 타임테이블이 주어져 준비 중"이라고 화답했다.

하지만 정작 이해당사자인 노사 양측 모두가 정부의 빅딜 시도에 강력히 반대하면서 정부도 한 발 물러섰다.

문 위원장과 만난 지 불과 이틀 뒤인 지난 16일 홍 부총리는 4개 주요 경제단체장들과 만난 직후 기자들과 만나 "경영계 단체장들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문제와 ILO 협약 비준을 패키지로 타결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며 "독립적으로 다뤄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줬고 이에 경청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문 위원장도 기자간담회에서 "이 문제들은 개별 사안으로, 딜을 한다든지 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마음 급한 정부 한 발 물러섰지만…노사 합의는 쉽지 않을 듯

이에 대해 노사 양측 모두 정부가 2월 국회라는 시한에만 매몰돼 전혀 다른 두 사안을 억지로 한번에 해결하려는 무리수를 뒀다고 평가한다.

노동계로서는 ILO 핵심협약 비준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을 따르도록 후진적인 국내 노동 제도를 개선하느냐의 문제일 뿐, 애초 국내 사회적 대화의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거래 대상조차 아니라고 지적한다.

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자칫 노동시간 상한제 개편 효과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영계는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협약이 비준되면 해고 노동자나 비노조원의 노조 참여가 가능해지면서 노사 갈등이 격렬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반면 탄력근로제 확대 효과는 일부 사업장에만 효과를 거둘 뿐이고 활용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만약 빅딜을 강행하면 노동계에만 유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노사 양측의 입장도 엇갈린데다 사안 간에 연관성도 없는데도 정부가 이들을 굳이 한꺼번에 해결하려던 이유는 한마디로 정부의 마음이 급하기 때문이다.

집권 3년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로서는 레임덕 시기가 오기 전에 최저임금 논란에 부딪혀 지지부진했던 '노동존중사회'의 성과를 거두되, 급격히 악화된 경제 지표를 회복하며 '경제 활성화'까지 이루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특히 ILO 100주년인 올해 안에 ILO 핵심협약을 비준한다면 오는 6월 ILO 총회를 앞두고 외교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계산 속에 늦어도 2월 국회부터 관련 논의를 궤도에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하지만 정작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보수야당인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이 맡고 있는 상황 등을 감안하면 그나마 노사합의라는 명분조차 갖추지 않으면 사실상 국회 비준을 받아내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정부는 2월 국회를 논의의 마지노선으로 잡은 탄력근로 확대안을 경영계와 보수진영에 줄 수 있는 '당근'으로 활용하려 빅딜에 끌어들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정부의 속셈이 무색하도록 일단 빅딜설 자체는 노사 양측의 반대에 부딪혀 사실상 결국 무산됐지만, 막상 두 사안 모두 2월 국회 전후로 국회 통과는커녕 노사 합의조차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일단 경사노위에서 각 사안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겠지만, 만약 이달 안으로 노사 합의가 불가능하다면 공익위원이나 정부가 직접 중재안을 강행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이 경우 오히려 경사노위 테이블에서 노사 양측의 반대를 받는 과정만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힘을 잃고 국회에서도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높아 두 사안을 둘러싼 갈등이 갈수록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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