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체육을 이끌어가는 수장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스포츠 성폭력 사태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입장을 표명하는 자리에 체육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대한체육회 제22차 이사회가 예정됐던 15일 오전 서울 올림픽파크텔에는 수많은 체육 관계자와 취재진뿐만 아니라 이기흥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스포츠문화연구소, 문화연대, 체육시민연대 등 단체 관계자들도 몰려들었다.
이들은 "성폭력 문제 방관, 방조한 대한체육회가 책임져라", "말뿐인 사과와 약속이 아닌 책임지는 자세를 요구한다", "체육계 성폭력 침묵의 카르텔을 끝내자" 등의 문장이 담긴 피켓을 들고 무언의 시위를 했다.
엘리베이터와 계단으로부터 회의장으로 연결되는 복도에서 취재진과 체육 관계자 그리고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자연스럽게 포토라인을 형성했다. 대한체육회 이사진은 예외없이 이들을 지나 회의장에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이사회 시작 시간인 오전 11시를 앞두고 회의장 앞 복도는 아수라장이 됐다. 이기흥 회장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건물 바깥쪽 출입구를 통해 측면에서 등장, 회의장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취재진과 관계자들이 몰려들었고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갔다.
이기흥 회장은 이사회 개회에 앞서 단상에 올라 모두 발언을 했다. 지도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와 전 유도선수 신유용 씨의 용기있는 고백으로 알려진 체육계 성폭력 실태에 대해 사과했고 대책안을 발표했다. 이기흥 회장은 발언 도중 수차례 고개를 숙였고 행사장 분위기는 무겁고 진중했다.
대한체육회는 이사회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이기흥 회장의 모두 발언 이후 취재진에게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이사회가 끝나고 퇴장하는 이기흥 회장에게 취재진이 질문을 퍼부었지만 그는 대답없이 행사장을 떠났다.
이기흥 회장은 시위하는 관계자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일반적이지 않은 루트를 따라 회의장 입장을 시도한 장면부터 행사장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소통에 대한 의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미리 준비한 쇄신안을 읽고 수차례 고개를 숙인 것이 전부였다. 민감한 사안에 침묵하는 체육계의 관행은 그곳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