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숙·도제'…엘리트 체육의 50년 골간 바뀌나

문재인 대통령, 합숙 체계와 도제식 억압된 훈련 방식의 검토 지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막을 올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막식에 대한민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자료사진=노컷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스포츠 성폭력 실태에 우려를 드러내면서 합숙과 도제식 훈련 방식의 개선을 주문함에 따라 폐쇄적인 엘리트 체육의 뼈대에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쏠린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새해 첫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학생 선수들에게는 학업보다 운동에 우선 순위를 두도록 하고 있어서 운동을 중단하면 다른 길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며 "선수들이 출전, 진학, 취업 등 자신들의 미래를 쥐고 있는 코치와 감독에게 절대 복종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운동부가 되면 초등학교부터 국가대표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합숙소에서 보내야 하는 훈련 체계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지 살펴주기 바란다"며 "체육계도 과거 자신들이 선수 시절 받았던 도제식의 업악적 훈련방식을 되물림하거나 완전히 탈퇴하지 못한 측면이 없는지 되돌아보고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쇄신책을 스스로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뿌리깊게 박혀있는 엘리트 중심의 선수 육성 방식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주문하면서 체육계의 폐쇄적인 구조 개선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할 때다.

오랜 합숙과 도제식의 훈련 방식은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 구조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여겨졌다. 1966년 태릉선수촌 설립을 계기로 박차가 가해진 이같은 시스템의 가장 큰 목표는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국제대회에서 선전해 대한민국을 전세계에 알리면 국민들이 더 행복해 할 것이라는 논리다.

(이럴 때 '국위선양'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나라의 권력이나 위세를 널리 드러낸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일본에서 건너온 표현으로 메이지정권을 세계 만방에 알리자는 것이 본래의 뜻으로 그 배경을 이해한다면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부작용이 많았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의 성폭행을 폭로한 심석희와 전 유도선수 신유용의 용기있는 고백에서 드러났듯이 훈련 구조의 폐쇄성, 지도자와 선수의 강압적인 상하 관계에서 비롯된 폐단은 쌓일 대로 쌓였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에서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인터뷰에서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모습도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된 엘리트 체육의 한 단면이다.

스포츠를 대하는 대중의 인식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더 이상 성적이 전부가 아니다. 금메달에 환호하는 목소리만큼이나 목표를 이루지 못한 선수를 격려하는 응원의 목소리도 크다. 금메달 개수로 따지는 나라별 순위에 대한 반감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국 선수단은 작년 9월 인도네시아에서 끝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3위를 차지했다. 중국이 종합 1위를 차지한 가운데 한국은 24년만에 일본에게 2위를 내줬다. 순위표를 바라보는 체육계와 대중의 온도차는 컸다. 체육계는 일본에게 밀리는 것을 걱정했지만 스포츠 팬들은 순위에 큰 관심이 없었다.

류태호 고려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14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국가 주도의 선수 육성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며 "스포츠가 국민의 건강과 여가 선용으로 좋은 수단이라는 프레임으로 바꿔야 한다. 스포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봐줘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엘리트 체육 구조의 개선을 요구한만큼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변화는 시작됐다. 대한빙상경기연맹 관리위원회는 지난 14일 "국가대표팀을 포함한 각급 훈련단에서 하고 있는 합숙 훈련 기간을 대폭 축소하겠다. 각급 훈련단에는 여성 지도자와 여성 심리 상담사를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긍정적인 효과가 분명히 존재하는 엘리트 체육의 근간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지금은 선수의 인권이 먼저다. 폐쇄적인 구조에서 비롯되는 부작용을 먼저 살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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