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손을 거치면 의뢰업체나 예술가들이 혼자 끙끙 앓던 난제도 요술 같이, 그것도 싸고 빠르게 해결됐다고 한다. 재료는 물론 수십년의 관록과 지혜까지 한데 모은 덕분이다. 그 사이 '청계천에선 탱크나 잠수함, 인공위성까지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는 관용어로 굳어졌다.
이후 도·소매를 망라하고 비슷한 업종이 가까이 뭉쳤다. 공구거리의 한 상인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존재하는 곳"이라며 "한 업체에서 모든 걸 살 수 없으면 옆 가게에서 제품을 완성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유통환경이 변하면서 인적이 부쩍 줄었다. 상인들이 다시 기대를 키운 건 서울시가 2년 전쯤 세운상가를 리모델링하는 도시재생사업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였다.
조립식 3D 프린터를 만드는 '아나츠' 같은 스타트업 기업도 이때 입주했다. 아나츠 이동엽 대표는 "도면만 들고 다니면 모든 걸 만들 수 있는 이곳이 저희 같은 스타트업에게는 천국"이라며 "중국이나 베트남을 따라잡기 위해 다품종 소량생산이 필요한데 여기서 가능성, 그리고 미래를 봤다"고 말했다.
땅 주인이 도장을 찍은 뒤 세를 들어 가게를 운영하던 대부분의 공구상은 속수무책이었다. 억지로라도 버텨보려 했지만, 소송 압박과 폭증한 임대료를 이겨낼 도리가 없었다는 게 상인들의 말이다.
이곳에서만 40여년 동안 공구를 만들었다는 한 상인은 "내용증명이나 수억, 최대 30억의 손해배상 청구서가 상인들 집에 끊임없이 날아들었고, 월세가 2배까지 오르기도 했다"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억울했다. 그런 심리적 압박 때문에 사실상 쫓겨난 것"이라고 토로했다.
결국 400여개의 업체가 2개월 만에 문을 닫게 된 것으로 시민단체 리슨투더시티 조사결과 파악됐다. 이 지역에는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구상 일부는 없던 권리금을 얹어 주변 지역으로, 일부는 수도권 외곽으로 옮겼다고 한다. 또 일부는 장사를 접었다. 주변의 '수표도시환경정비사업'까지 본격화하면 거리는 그 모습을 되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대에 걸쳐 60년 동안 운영됐던 '평안상사'의 홍성철 대표는 "좁은 골목마다 우리 숨결이 살아 숨 쉰다"며 "휘황찬란한 종로에 비해 불 꺼진 이곳이 눈엣가시일 수 있겠지만 낡은 건물을 헐고 고층 빌딩을 세우면 후세에 콘크리트 더미만 남겨주는 셈이 아니냐"고 일갈했다.
특수공구를 만드는 또 다른 상인은 "유기체인 시장에서 머리인 세운상가만 남겨놓고 팔다리 다 잘라버리면서 무슨 도시 재생이냐"며 "시장이 무너질 걸 알면서 그랬다면 정말 서울시와 대한민국이 싫다. 만약 몰랐다면 이제라도 다시 복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는 이 지역의 산업적 가치를 고려해 개발과 공구상이 공존하도록 노력한다면서도, 일부 토지를 매입하는 등의 추가 지원 계획은 아직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