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적 경영참여' 국민연금, 조양호 회장 일가 겨누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후 적극적 주주권행사 첫 대상 거론
16일 기금운용위서 논의…수탁자책임위 검토 거쳐 내달 회의서 결정

지난해 7월말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행사를 통한 제한적 경영 참여의 첫 대상으로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칼을 겨눌지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스튜어드십코드는 국민연금이나 자산운용사 같은 기관투자자들이 큰 집의 집안일을 맡은 집사(Steward)처럼 고객과 수탁자가 맡긴 돈을 자기 돈처럼 여기고 주주 활동 등 수탁자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는 행동지침이자 모범 규범이다.

10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오는 16일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운용위)를 열어 3월 대한항공과 한진칼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지를 논의한다.

각종 사익 편취, 배임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조양호 회장 등 대주주 일가가 주주가치를 훼손한 데 대한 책임을 물을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지분 12.45%를 가진 2대 주주다. 한진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진칼 지분 7.34%를 보유해 조 회장 일가(28.93%), 한진그룹에 대한 경영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국내 사모펀드(PEF)인 KCGI(10.71%)에 이어 3번째로 많은 주식을 갖고 있다.

기금운용위는 일단 이날 회의에서는 3월 대한항공과 한진칼 주총에서의 임원 선임이나 해임 등 구체적 주주권행사 사항은 결정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대한항공과 한진칼이 '땅콩 회항'과 '물컵 갑질' 등 국민 공분을 산 경영진 일가의 일탈 행위로 주주가치가 떨어진 데 대해 어떤 조처를 했는지 구체적 상황을 기금운용본부로부터 보고받기로 했다.

이를 바로잡고자 국민연금이 과연 주주권행사의 칼을 휘두를 것인지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검토해서 의견을 제출하도록 요청하기로 했다.

이후 기금운용위는 2월에 다시 회의를 열어 수탁자책임전문위의 검토의견을 바탕으로 3월 대한항공과 한진칼 주총에서 이사 선임·해임과 같은 주주권을 행사할지를 정한다는 방침이다.

기존에 국민연금 의결권행사를 자문하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확대·개편한 수탁자책임전문위는 주주권행사의 투명성·독립성 제고를 위해 구성한 조직이다. 횡령·배임 등 대주주 일가와 경영진의 사익 편취 행위, 저배당, 계열사 부당 지원 등 주주가치 훼손 행위에 대해 주주권행사 여부를 결정한다.

복지부 연금재정과 관계자는 "오는 16일 열리는 기금운용위는 어떤 구체적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한진그룹을 둘러싼 전반적인 경영상황을 들여다보고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오너 리스크와 불투명한 지배구조로 대한항공의 기업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를 해왔다.


대한항공 주가가 뚝뚝 내려가던 지난해 6월 5일 공개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국민연금이 주식을 보유한 기업에 공개서한 발송이라는 주주권을 행사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다.

국민연금은 공개서한에서 경영진 일가의 일탈 행위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와 해결방안을 물으면서 대한항공의 입장과 그 입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요구하고 대한항공 경영진 및 사외이사와의 비공개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돌아온 것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의례적 답변이었다.

2대 주주로서 무시당하고 체면을 구긴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 국민연금은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는 행동수단이 없었다. 이렇다 할 후속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 신세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간 국민연금은 막대한 지분을 가지고도 주주로서 제역할을 못 했다. 횡령·배임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재벌 사주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 등 민감한 사안에서는 기권하거나 중립 의사를 밝히며, 몸을 사렸다.

'주총 거수기'니 '종이호랑이'니 하는 비아냥을 들었던 이유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시행하면서 '행동하는 주주'로서 기업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국민연금은 자본시장법상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임원의 선임·해임 관련 주주제안 등의 주주권을 제한적으로 행사한다.

경영 참여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 등 제반 여건이 구비된 후에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는 것이 원칙이나, 그 전이라도 기금운용위가 주주가치의 심각한 훼손 등을 이유로 의결한 경우에는 시행할 수 있다.

현행법은 임원의 선임·해임 또는 직무의 정지, 정관의 변경, 자본금 변경, 합병·분할·분할합병, 주식 교환·이전, 영업 양수·양도, 자산 처분, 회사 해산 등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제안, 위임장대결 등의 행위를 경영 참여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의 의결만 거치면, 경영진 일가의 사익 편취에 일조하거나 갑질 등으로 기업가치를 떨어뜨린 회사의 임원에 대해서는 해임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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