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5월 3일부터 11월 30일까지 남북역사학자협의회에 위탁해 '나진-녹둔도 이순신 유적지 남북러 공동조사 방안 연구' 용역을 실시했다.
연구보고서는 이충무공전서와 선조수정실록 등 각종 사료를 분석해 이순신 장군이 1586년부터 함경북도 경흥의 조산보 만호(萬戶) 직책을 맡았다고 전했다.
조산보에 거주하던 조선 백성들은 봄에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에 들어가 농사를 짓다가 수확을 마친 뒤 다시 조산보로 들어와 방어에 임했는데, 이듬해에는 이순신 장군이 이들의 둔전 임무를 겸했다고 한다. 장군은 녹둔도가 멀고 고립됐다며 병마절도사 이일에게 추가 군사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다 1587년 8월에는 마니응개라는 오랑캐 추장이 군사를 일으켜 이순신 장군의 진지를 기습했다. 포위전 끝에 아군 10여 명이 전사하고, 160여명이 포로로 붙잡히는 피해를 입었다.
이순신 장군은 직접 활을 당겨 붉은색 털옷을 입은 적군들을 맞춰 땅에 떨어트렸고, 그러자 적이 퇴각해 물러났다고 한다. 장군은 이경록과 함께 추격해 사로잡힌 군사 60여 명을 되찾아 패배를 만회했다.
또 같은 해 가을에 장군은 조산진성으로 쳐들어온 여진족 부대를 섬멸했는데, 이를 기념하는 승전대비가 현 함경북도 나선시 남산 모도 마을에 세워지기도 했다.
녹둔도는 두만강 하구 지역에 위치한 퇴적지다. 세종대왕 시절 편입돼 약 400년간 우리 영토였지만, 1860년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나라가 러시아와 베이징 조약을 맺은 뒤 연해주를 할양하면서 현재는 러시아 하산시의 일부가 됐다.
연구팀은 이순신 장군이 복무한 북측 두만강변의 조산진성과 승전대비, 러시아 내 녹둔도 토성 추정지 등 관련 유적을 남북러가 공동으로 조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2018년 급변한 남북관계에 따라 개성 만월대 공동조사가 3년만에 재개되면서, 11월에 나선-녹둔도 이순신 유적 조사에 대해 북측에 설명을 하게 됐다"며 "북측도 나선시의 이순신 유적에 대해 호의적으로 반응했다"고 전했다.
북측 관계자들은 "이순신 장군은 북에서도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민족의 영웅이며 남북이 그 유적을 함께 조사하고 가꾸는 사업을 함께한다면 남북관계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어 좋은 일"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연구팀은 남북 공동으로 7일간 나선시의 이순신 유적을 답사하고 현황을 공유한 뒤, 북측 당국을 설득해 발굴조사까지 진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 지역의 남북러 공동조사를 위해 러시아 극동연방대학과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사이 교류협약을 통해 학자들을 초청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소요되는 예산을 약 3억 3천만원으로 추산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 공동조사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북측과 협의나 후속조치를 진행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현 제재 틀 안에서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작업이고, 민족공동체를 회복하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어 연구용역을 실시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