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9일 새벽.
갑작스런 화재로 7명이 세상을 떠난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앞만 보고 길을 걸으면 이곳에서 불이 났는지 알 수 없다.
고개를 들어 건물 위를 보면 검게 그을린 그 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국일고시원은 건물 2층과 3층, 옥탑을 빌려서 운영했다.
고시원 내부는 모두 철거된 상태다.
출입을 제한하던 폴리스 라인도 사라졌다.
2층의 모습은 화재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2층에는 24개의 방, 24명이 거주했다.
2층 사람들은 모두 생명을 건졌다.
'7시 이후에는 창문을 열지 말아 주십시오. 찬 기운이 들어와서 이웃 방들이 춥다고 합니다. -국일고시원 총무'
2층 비상문에는 고시원 총무가 적어 놓은 글귀가 남겨져 있다.
비상문으로 나간다고 해도 1층으로 가는 계단은 없다.
1층으로 가려면 2m가 넘는 높이서 뛰어내리는 수밖에 없다.
완강기는 있지만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
3층으로 올라가자 상황이 달라졌다.
불이 시작된 3층은 그을음으로 가득했다.
2층과 똑같은 구조지만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발화는 입구에 있던 301호에서 발생했고 좁은 고시원의 대피로를 막았다.
301호 거주자인 70대 박모씨는 새벽에 전열기를 전원을 켜둔 채 화장실을 간 사이 화재가 발생했다고 진술했다.
벽도 천장도 모두 검은색이다.
두 달 째 환기가 되고 있지만 매캐한 냄새는 여전했다.
고시원 맞은편 옆 건물에는 비둘기가 앉아 있지만 불이난 3층은 냄새 때문인지 비둘기조차 찾지 않는다.
바닥 면적 42평.
3층은 29개의 방, 26명이 거주했다.
3층 비상문은 그을음으로 가득했다.
비상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만약 3층 비상문을 나간다면 곧바로 2층 비상문 쪽 발판으로 추락한다.
열리지 않는 창문으로 손자국이 남아 있다.
오른손이다.
화재 때인지, 화재 후인지 손자국의 주인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3층 어디에서도 이런 손자국을 찾아볼 수 없다.
창문이 없는 방은 20만 원 후반, 있는 방은 30만 원 초반 수준.
생존자 이모씨는 창문으로 고시원을 탈출했다.
이 창문 하나가 생사를 갈랐다.
창문 밖으로 청계천에 마련된 분향소가 보인다.
3층으로 향하는 복도의 전기 스위치는 녹아내린 채 내려가 있다.
가시거리가 제로에 가까운 연기 속에 불빛은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4층 옥탑으로 가는 계단도 불길로 가득했다.
당시 생존자 중 한 명은 4층 옥상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지만 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망자 총 7명, 부상자 11명.
사상자는 모두 3층과 옥탑에 살던 사람이었다.
고시원 앞에 놓여 있던 분향소와 추모 공간은 지난 12월 27일 49재를 끝으로 청계천 쪽으로 옮겨졌다.
언젠가는 발길은 뜸해질 것이다.
언젠가는 이곳도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