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로봇은 일자리를 빼앗지 않았다"…사실일까?

세계은행(WB) 연간 보고서 '일자리의 본질적 변화' 발표
보고서 "긱 경제 양산과 노동조건 하락 주장은 맞지 않아"
반대측 "로봇·자동화, 부익부빈익빈 '마태 효과' 가속화"
보고서 "노동자, 시장서 살아남으려면 개조(retool) 거쳐야"
머천트 "자동화, 노동자 보호 약화 → 실업으로 이어질 것"

(캡처=sick.com)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무인상점 '아마존 고' 매장을 확대하고,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술기업인 구글의 웨이모는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대 기술산업의 총아로 불리는 자동차 제조사들의 공장은 전체 공정의 절반 이상이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으로 채워지고 있다.

오늘날 인공지능(AI)과 소프트웨어, 로봇기술의 발달은 무인 자동화 시스템 확산을 가속화 하며 인간의 일자리를 점차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과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로봇은 과연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을까.

세계은행(World Bank)은 최근 연간 세계 개발 보고서 'The Changing Nature Of Work(일자리의 본질적 변화)'를 발표했다.

◇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 "로봇이 일자리 없앤다는 두려움 근거 없다, 새 일자리 창출"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 통신과 일부 외신들은 보고서를 인용해 "로봇이 우리의 모든 일자리를 죽이는 것은 아니다(Robots Aren't Yet Killing Off All Our Jobs)"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자동화는 지금까지 세계 노동 시장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미래의 작업에 필요한 새로운 기술과 더 나은 사회 안전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내용도 인용했다.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인 피넬로피 코우지아노우 골드버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로봇이 일자리를 없앤다는 두려움이 있는데, 이같은 공포를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며 "4차 산업혁명은 지난 세 차례의 산업혁명을 거치며 일어난 새로운 흐름이다. 앞서 세 차례의 산업혁명에서 우리는 살아남았다. 때문에 기계가 인간을 완전히 파괴한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는 적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은행의 보고서를 덧붙이면 그동안 사라진 모든 일자리에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선진국들은 사업장에서 손을 떼고 있지만, 동아시아지역 산업부문의 성장은 이들 선진국 경제의 손실에 대한 보상 이상이었다"고 분석했다.

세계은행이 발간한 2019 세계개발연간보고서 '일자리의 본질적 변화'

다만 보고서는 "일부 분야의 노동자들은 기술의 발전으로 큰 혜택을 보는 반면, 다른 분야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살아남기 위해 개조(retool)을 거쳐야 한다"며 "플랫폼 기술은 막대한 부를 창출하지만 소수의 사람들만이 소유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기술의 진보와 자동화가 부유한 사람을 더 부유하게 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만드는 이른바 '마태 효과(Matthew effect)'를 겪고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일부 기술 친화적이거나 시장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로봇을 조종하는 가장 상위에 있게 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하지만 80~90년 로봇이 공장에 출연하자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인간의 삶을 더 풍족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 앞섰고, 4차 산업혁명을 촉발시킨 구글 알파고가 인간 바둑기사를 완전히 제압하면서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능가해 결국 이에 예속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인간이 개입해야 AI가 명령을 수행할 수 있고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 진보 경제학자들 "자동화·로봇, 부익부 빈익빈 '매튜 효과' 가속화 할 것"

진보주의 경제학자들은 그러나 이는 서구사회가 산업혁명을 거치며 진화론에서 파생된 치열한 경쟁 속의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에 기반을 둔 시장자유주의 산물이라고 지적한다.

영국 경제학자 스펜서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더 좋은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살아남아 시장을 지배하고, 이러한 소비자의 경향에 잘 따라오지 못하는 회사는 경쟁에 의해 도태된다"는 이론으로, 사이비과학으로도 비판받는 우생학(eugenics)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적자생존'은 1·2차 산업혁명을 지나 시장경제가 본격 자리잡으면서 산업화 사회와 시장자유주의,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를 떠받치는 중요한 바탕이 된다.

1·2차 산업혁명은 가내수공업, 공동체 생산과 같은 오래된 전통 산업 방식에 큰 변화를 불러오면서 코우지아노우 골드버그의 말과 달리 실제로는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산업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닥친 경제 순환 과정(도태와 창출)은 지난 150여년 간 시장경제의 굳은 바탕이 되면서 첨단기술 시대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의 밑바탕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은행 보고서는 기술의 일자리 파괴 현상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인류가 혁신을 위한 재능을 어디로 이끌지 이처럼 두려워하지 않은 때는 없었다. (중략) 그러나 혁신은 삶의 기준을 변화시켰다. 기대 수명이 높아지고 기본적인 건강관리와 교육이 확대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득이 증가했다. (중략) 이러한 낙관주의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다.


선진국 국민들은 기술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그들은 (비정규직 일자리가 심화되는) '긱 경제(gig economy)'의 등장으로 인해 증대되는 불평등이 노동조건을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균형이 맞지 않다. 일부 선진국과 중진국에서 제조산업이 자동화로 인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코딩으로 가능한(codifiable)' 단순한 일자리는 대체에 가장 취약하다. 그러나 기술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생산성을 높이고 효과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 혁신을 통해 기술은 새로운 분야와 새로운 과제를 창출한다."

아이폰에 관한 베스트셀러 '원 디바이스(The One Device)'의 저자이자 기술분야 저널리스트인 브라이언 머천트는 기즈모도 기고문에서 "이같은 세계은행의 보고서는 기술을 '좋다'와 '나쁘다'는 이분법으로 가정하는 동시에 '자동화(Automation)'와 '기술(Technology)'을 동일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생명을 연장하는 약품이나 교육의 발명이 자동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이 자본주의식 대규모 기계화 없이도 페니실린과 공립학교 발명이 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자동화에 회의적인 입장이 마치 잘못된 것처럼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이분법"이라고 지적했다.

테슬라 자동차 자동화 생산공장 기가팩토리 공정 모습 (사진=테슬라)

◇ 세계은행, 미국으로 대표되는 IMF, WTO와 함께 3대 국제 경제개발기구

세계은행은 전 세계의 빈곤 퇴치와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을 목표로 1945년 설립된 다자개발은행으로 2018년 현재 189개 회원국을 보유한 국제금융기관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와 함께 3대 국제경제 기구로 연간 500억∼600억달러를 개도국 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는 산업화를 위한 교육 및 재교육에 대한 투자를 포함하는 '사회적 약속(Social Contract)' 이행을 권장한다. 설립이래 총재는 모두 미국인이었다.

일부 진보 학자들은 방적·증기기관·제철 등 3대 기술로 대표되는 영국 산업혁명 당시 저숙련자를 교육시키기 위해 생겨난 것이 오늘날의 현대화 된 '학교(School)' 개념의 출발로 본다. 일각에서는 세계은행이 저개발국가를 산업화하고 이를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하는데 앞장서며 시장주의 경제 환경에 적합한 노동인력 개조(retool)에 투자하고 있다며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또 다음과 같은 주장도 실었다.

"기술은 균형을 이루면서 이전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 기술은 단순한 업무에 대한 노동자의 수요를 줄임으로써 많은 분야에서 높은 노동 생산성을 가져왔다. 그러면서, 한때 공상과학소설에서나 상상했던 새로운 분야의 문을 열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기업들은 새로운 생산방식을 채택하고 시장은 확장되며 사회가 발전한다.

기업은 자본을 더 잘 활용하고, 정보의 장벽을 극복하고, 아웃소싱을 하고, 혁신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기업의 운영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한다. 기업들은 한 곳에서 부품을 생산하고, 다른 곳에서 부품을 조립하고,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노동자를 고용한다. 소비자들은 더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제품을 즐길 수 있다."

머천트는 "이게 최고라는 것인가. 이 보고서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나. 기술과 기업들이 일자리를 줄이고 자본 이득을 극대화 하고, 혁신에 혁신을 하고...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이 있을 수 있냐"며 "핵심은 일자리가 다른 곳에서 대체된다 하더라도 자동화는 현재의 일자리를 완전히 없애고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미 지난 20년간 미국에서의 자동화는 노동력 아웃소싱보다 수백만 개 더 많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며 미국인의 3분의 1은 불안정한 노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미국 제조산업의 호황을 이끌었던 러스트 벨트 전역의 텅빈 공장들은 수 많은 지역사회를 괴롭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일자리 감소, '긱 이코노믹' 양산" 비판 vs 세계은행 "살아남으려면 개조(retool) 거쳐야"

전문가들은 기술 진보에 의해 창출된 새로운 일자리가 모두 고품질의 일자리로 진화된 것은 아니며 주로 후발개발도상국에서 볼 수 있는 비정규직(아르바이트, 인턴, 계약직, 임시직 등)과 같은 이른바 '긱 경제 일자리(gig economic work)'가 오히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 대거 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로버트 앳킨스 회장은 전미경제조사회(NBER) 보고서를 인용해 "2015년 우버, 리프트, 태스크래빗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일자리는 미국 전체 일자리의 0.5%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앳킨스는 "세계은행 보고서는 기술로 인한 일자리의 본질적 변화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주장하지만, 노동법 등 관계규정에 저촉되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게 한다"고 지적하면서 "노동법이 시장에 불고 있는 고용 형태의 변화에 대응해 노동자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전 세계 고소득 국가에서 단체협약(노조가입) 근로자의 비율이 2000년 평균 37%에서 2015년 32%로 낮아졌다고 밝혔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17년 현재 미국 전체 사업장 내 노조원 비율은 10.7%에 불과하다.

브라이언 머천트는 "세계은행 보고서의 핵심은 '조용히 자동화를 계속하라'는 의미"라며 "이로인한 노동자 보호와 혜택은 약화되고, 결국에는 대규모 실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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