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비핵화 상응조치로서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거론함에 따라 우리 정부의 중재 역량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우리로서도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는 언젠가 반드시 이뤄야 할 국익 차원의 과제다. 하지만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국내 반대 여론도 다독여야 하는 크나큰 난제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난해 9.19 평양공동선언의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정상화한다는 합의를 이유로 신중한 입장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나름대로 출로 모색에 골몰하고 있다.
정부는 3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열어 북한이 제기한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선 남북간 대화 동력을 되살리고 북측의 정확한 진의 파악 등을 위해 고위급회담을 개최하는 방안 등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북측의 의중에 대해 한국이 미국 눈치만 보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불만의 표현으로 해석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북남관계는 조미관계의 부속물이 될 수 없다'는 개인 명의 논평을 통해 미국의 속도조절론을 맹비난하면서도 남측에 대해서도 섭섭함을 드러냈다.
북측의 이른바 '주동적 조치'에도 미국이 별다른 상응조치 없이 대북 압박만 지속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지난 2일 북한 신년사 평가에서 "북한이 이미 지난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영구폐기' 카드를 제시한 상황에서 북한에게 또 다른 중요한 양보를 추가로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상응조치에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와 남북한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공사 개시 등을 포함시켜 우리의 이익이 최대한 반영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도 2일 한 토론회에서 "미국이 원칙론과 목표론을 고수한다면 2차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지더라도 미국 내에서 우려하는 포괄적·추상적 합의밖에 나올 수 없다"며 "개성·금강산·철도 등에 대한 제재 해제 특구 지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로서도 이런 기류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을 설득할 논리를 찾기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일각에선 북한 철도·도로 현대화 접근 방식을 원용, 개성공단의 경우 기업인 방북을 통한 시설 및 자산 점검 등의 단계별 접근법을 제안하고 있다.
금강산관광의 경우는 대금 일부를 현물로 지급하거나, 아예 당분간이나마 비영리 행사만 현지에서 추진하는 방안 등을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설령 이런 식으로 유엔 제재를 비껴간다 하더라도 북측이 만족할 수준이 될 수는 없고 자칫 미국과의 공조 분위기만 흩뜨릴 수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걸고 정공법으로 미국을 설득하는 게 보다 바람직하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유엔 안보리 제재 이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독자제재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국제제재의 틀에 묶여있고자 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미국이 좀 더 유연성을 가지고, 한국도 경협에 대한 의지를 갖는다면 명분이나 방법에 있어서 충분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선언을 유엔을 통해 국제 공인을 받음으로써 개성공단·금강산관광에 대한 제재 예외 적용을 얻어내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나오고 있다.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 판문점 선언을 회람만 시키고 지지결의는 영문 번역이 늦어졌다는 이유로 얻어내지 못한 사실을 언급하며 "정부의 지나친 미국 의존적 태도가 문제"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