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기해년(己亥年) 새해를 목전에 두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 친서를 전달하면서 지지부진하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친서에 이어 올해 김 위원장의 신년사 내용, 향후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따라 올 한해는 한반도 정세가 또다시 분기점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 김정은 위원장 '신년사'에 어떤 내용이 담길까···'친서'로 긍정적 내용 기대
남북관계는 지난해 급진전을 이뤘지만 북미정상회담 이후 6개월 가까이 교착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진전된'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며 대북제재 수준을 높여갔지만 북한은 선(先)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며 팽팽히 맞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고 서울 답방을 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친서를 보내면서 비핵화 대화는 다시 동력을 얻은 상황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연내 답방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는 사람이라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위해 일단 연내에 친서를 보내고, 신년사를 보내는 형식으로 일정한 메시지가 나가는 것을 의도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친서에는 북미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와 비핵화에 대해 계속 협의한다는 부분, 향후 답방에 대한 의지 표명 등이 담겼는데, 이 내용이 신년사의 골간을 이룰 가능성이 높고 (한미를 향한) 대외적 메시지가 긍정적으로 발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미국 역시 북미대화 교착 국면에서 지속적으로 대화의 의지를 내비춰 왔기 때문에 만일 북한이 신년사에서 좀더 진전된 입장을 내놓을 경우 북미관계와 비핵화 협상도 제2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2018년도 신년사에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 정부에 적극적인 화해 메시지를 보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북 대표단을 파견하고 남북 당국 만남을 제의한 것. 미국에 대한 비난도 적절한 수준으로 자제했다. 이에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연초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가 성사된 것을 시작으로 남북·북미관계는 한 해동안 급물살을 탔다.
청와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서울 답방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환영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고 화답했다. 사그러들었던 연내 답방 분위기에 다시 불씨가 붙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의 답방이 성사되면 이는 사상 최초다. 김정은 위원장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6·15공동선언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대화 정례화, 그리고 서울 답방을 약속했지만 '신변안전' 등 이유를 들며 끝내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
만일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성사된다면 남북 간 조성된 화해·평화 분위기가 무르익는 효과를 노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교소식통은 "현재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여론이 더 크게 나오고 있고, 문 대통령이 15만 평양시민들 앞에서 연설한 것처럼 김 위원장이 남한에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면 상징성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있었던 남북 철도·도로 착공식 등 남북 교류·협력 관련 추가 사업들은 남북의 확고한 의지에 힘입어 동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를 위한 공동조사 결과나 통일부가 앞서 밝힌대로 내년 초쯤 나오면 추가 진전을 위한 남북 간 협의를 거치게 된다.
국제기구를 통한 우리 정부의 800만 달러 규모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도 미국이 리뷰를 시작한다고 밝힌만큼 추가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 간 유해발굴 사업 역시 제 2차 한미 워킹그룹 회의에서 차질없이 진행하도록 한미가 합의한 바 있다.
화상상봉 등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회담이나 북측 예술단의 방남 공연 등도 지난해 실현되지 못하고 올해 남북관계의 '숙제'로 남게 됐다.
남·북·미 세 정상 모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정치적 이익에 부합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를 반복한다 하더라도 대화 동력은 쉽사리 멈추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톱다운 방식의 논의 체계가 다시 가동되며, 지도자들간의 만남을 통한 '통 큰' 결단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긍정적인 기류 속에서도 결국 관건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서 양측이 모두 만족할만한 구체적인 합의가 나올 수 있을지 여부다.
미국 내부에서도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 불거져 나오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북미 간 대화의 동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점차 어려운 환경에 놓일 수 있는 까닭이다.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북미 간 이견은 여전하고도 크기 때문에 비핵화 이행조치와 제재완화를 둘러싸고 북미 간 지지부진한 줄다리기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IFANS)는 '2019 국제정세전망' 보고서에서 "내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정상급 노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북미 간에도 비핵화와 상응 조치를 두고 일시적 숨 고르기와 줄다리기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북미 양측이 수용 가능한 접점을 찾기가 순탄치 않으므로 핵 협상은 성과 도출이 더딜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남북관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할 전망이나 선형적 발전 양태를 보이기보다는 안보 경쟁의 관성으로 인해 비선형적인 모습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새해에는 문재인 정부가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라 운전자 및 촉진자로서 대화와 협력의 모멘텀을 심화시켜 나가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또다른 외교소식통은 "연초부터 긍정적인 시그널이 교환되면서 상당히 빠르게 북미 대화 재개 수순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고 남북 간에도 답방 목표에 맞춰서 남북 협의과정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비핵화 논의에 있어 우리 정부가 어떻게 중재할지 그림을 그려두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