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는 익숙한 일이다. 배우로 시작해 감독으로 널리 인정받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로버트 레드포드,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영화를 꾸준히 내놓으며 유명 제작자로도 이름을 알린 브래드 피트가 대표적이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마주한 하정우에게 로버트 레드포트나 브래드 피트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지 물었다. "그들은 롤모델이 아니라 (영화적) 형제이자 동료"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나의 롤모델은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예요. (웃음) 그들의 호기심은 여러 방면에 업적을 남기도록 도왔다고 봅니다. 나 역시 질적 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제작자·감독·배우가 돼야죠. 묵묵히 갈 겁니다."
감독과 제작자라는 위치는 영화인으로서 하정우를 성장시킨 자양분이었다.
"영화 '허삼관'(2014), '롤러코스터'(2013)를 연출하면서 카메라 뒤 풍경을 알았죠.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랄까…. 배우든 감독이든 제작자든 무게감이나 책임감은 비슷하게 느껴지는데, 'PMC'의 경우 5년간 제작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감정이입이 보다 직접적이긴 합니다. '허삼관'을 한 뒤로는 영화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아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영화를 대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조심스러워졌어요."
세계적인 배우이자 제작자, 감독이 되겠다는 하정우의 포부는 한국영화 위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해외 진출을 두고 단순히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는 식으로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한국이 중심이 돼 만들 수 있습니다. 'PMC'가 그렇죠. 기획 단계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선택한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글로벌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어요."
민간군사기업을 소재로 다룬 영화 'PMC'는 영어 대사가 주를 이룬다. 극중 다국적 용병은 외국 배우들이 연기했다. 보편성을 강화하기 위해 언어 등 문화장벽을 낮춘 셈이다.
◇ "1020세대 호응에 놀라…영화 표현 가능 범위 크게 배워"
"타격감과 밀도, 생동감은 'PMC'의 뚜렷한 장점입니다. 주인공 에이햅(하정우) 바로 옆에서 보는 것 같은 체험형 영화죠. 얌전한 영화가 아니에요. 현기증 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차분하게 영화를 즐기는 관객이라면 저항감이 들 수도 있겠죠. 이런 점에서 독특한 영화라고 볼 수 있어요."
이는 올해 극장가에서 '보헤미안 랩소디' 등의 반전 흥행을 이끈 젊은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정우는 "기획 단계에서 그러한 부분을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영화를 만들 때는 모든 관객에게 골고루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개봉 전 모니터링 시사 과정에서 30대, 40대보다 10대, 20대 호응이 훨씬 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랐어요. 게임을 즐기고 영상에 익숙한 세대에게 어필한 거죠.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앞으로 영화 형식이 이 정도까지 가능하겠다'는 것을 알았어요. 크게 배운 부분이죠."
하정우의 활동적인 성격은 그가 다방면에서 성과를 내는 데도 보탬을 주고 있는 모습이다.
"잠은 하루 7시간씩 충분히 잡니다. 다만 가만히 앉아 TV 보기, 멍 때리거나 미적거리는 건 성향상 안 맞아요. 그러한 시간에 운동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거죠. TV를 보더라도 런닝머신 위에서 시청하는 식으로 멀티테스킹을 좋아합니다."
관련 책을 낼 정도로 하정우는 걷기 마니아로 널리 알려져 있다. 걷기는 그에게 수많은 영감을 불어넣는 특별한 활동이다.
"촬영 등 일정이 없을 때는 하루 3만보 이상 걷습니다. 걷기는 삶의 감각을 계속 유지시켜요. 계절이 어떻게 변하는지,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어떤지…. 모든 걸 직접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잠도 잘 자게 되고요. (웃음)""
그는 갈수록 냉난방 잘 되는 실내 생활에 익숙해지는 현실에서, 우리는 점점 짐작에만 의존해 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며 "이 점에서 걷기는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느낌과 감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역설했다.
하정우는 "제작자로서 5년 동안 두 작품을 만들었는데 갈 길이 멀다. 앞으로가 중요하다"며 "좋은 경험이 된 두 영화를 발판 삼아 활발한 제작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