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 송강호 "이념적으로 치우친 배우 아닙니다"

[노컷 인터뷰] 송강호가 밝힌 마약 연기·흥행 부담
"배우 과정 달달하지만은 않아…외롭고 고통스럽다"
"인생사 늘 좋을 수 없어…나도 시행착오 겪을 수 있다"

영화 '마약왕'에서 하급 밀수업자에서 마약왕이 되는 이두삼 역의 배우 송강호. (사진=NEW 제공)
배우 송강호에게 '마약왕'은 호기심이자 도전이었다. '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 등 천만 영화와 흥행작을 다수 보유한 그는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다. 그러나 이번에는 안전한 길을 택하지 않고 우민호 감독과 함께 어려운 길을 골랐다.

"마약이라는 존재가 미국이나 남미 쪽과는 전혀 다르기도 하고 낯설어서 잘 모르는 두려운 세계이기도 하죠. 그 지점이 배우로서는 호기심과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했던 것 같아요.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에서 오는 리얼함도 있었고요. 소재는 마약이지만 이두삼이라는 한 인물이 가진 본질적 욕망과 집착, 파멸로 이어지는 굴곡진 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봅니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돈과 권력의 쾌락을 놓지 못하는 아이러니랄까요."

송강호는 서민의 얼굴을 대표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설국열차' '사도' '밀정' 등에서 색다른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가장 평범한 역할들을 비범하게 소화해냈다. 최근작 '변호인' '택시운전사' 등이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이런 송강호의 역량이 큰 역할을 했다. '마약왕'의 송강호는 그런 점에서 우리가 보지 못한 새로운 '송강호' 그 자체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15년 동안 진지하고 소시민적이면서 각성을 거쳐 어떤 정의로운 이상을 추구하는 그런 인물을 했죠.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마약왕'이 반가웠던 건 '살인의 추억'이나 '초록물고기' 속 캐릭터가 가진 유쾌함이 어느 지점에서 유연하게 발휘가 될 수 있고, 후반부는 제가 보여주지 못한 또 다른 모습이라 그런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적절한 시기에 다른 모습을 만난 것 같아서 반가웠죠."

영화 '마약왕'에서 하급 밀수업자에서 마약왕이 되는 이두삼 역의 배우 송강호. (사진=NEW 제공)
물론 마약을 통해 파멸의 길을 걷는 과정을 표현하기란 베테랑 배우인 그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연기 조언을 받거나 경험 등을 할 수도 없어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워 나가야 했다.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가장 괴롭고 힘들었던 건 마약에 취한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거였죠. 전혀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실감나는 연기를 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었어요. 오감을 체험한다는 생각으로 그냥 제 생각대로 끊기지 않고 연기했어요. 자료집이나 이런 걸 받기는 했는데 머리에는 들어와도 체화가 안 되니까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혼자 상상력으로 연구하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공을 많이 들였어요."

영화 마지막 20분은 마치 무대에서 1인극을 하듯 이두삼의 감정이 집약돼 한 번에 폭발하는 부분이다. '마약왕'의 클라이맥스를 꼽는다면 바로 이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송강호는 홀로 완전히 몰입해 연기를 펼쳐야 했다. 나눠줄 사람도 없이 오로지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상당히 무대적인 느낌이 강해서 도전이었죠. 위험한 요소이지만 반대로 비장의 카드가 될 수도 있다고 봤어요. 이두삼이라는 인물과 악인이 대척점을 두고 가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니까 익숙하지 않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네요. 그래서 이 후반부로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싶고요. 익숙한 구조에 대한 배반감 같은 게 있어서 관객들 의견이 만장일치되는 느낌보다 이야기할 게 많은 영화가 됐으면 해요. 열려 있는 느낌의 영화처럼."

영화 '마약왕'에서 하급 밀수업자에서 마약왕이 되는 이두삼 역의 배우 송강호. (사진=NEW 제공)
관객들은 '송강호'라는 배우가 선택한 영화에 깊은 신뢰를 가진다. '마약왕'을 책임진 주인공으로서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송강호가 영화 시장에서 가진 티켓파워와 존재감은 남다르다.

"연말 대진표를 보니 다양해서 좋더라고요. 당연히 부담이 상당히 있죠. 그러나 그 부담감이 앞으로 제 작품 활동을 좌지우지할 정도는 아닙니다. 늘 제게 주는 부담감 정도? 이번에도 결과를 떠나서 새로운 도전으로 인식된다면 결과는 그 뒤에 겸허히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해요. 흥행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고를 수도 없고 다양한 작품을 통해 새로운 느낌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게 목표거든요."

송강호의 시점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있다. 과거 자신이 천만 영화를 몇 편 했든, 연기력으로 어떤 평가를 받았든 거침없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간다. 이번 '마약왕' 역시 그런 기질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작품 속 자신에 대한 평가 역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개인적인 가치관은 있겠지만 저는 이념적으로 치우친 배우가 아닙니다. 작품을 선택할 때도 이념에 따라 선택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내고 싶고 그런 부분에 배우로서 욕심을 유지하고 싶어요. 아쉬운 작품은 다 있죠. 관객들에게 평가를 덜 받고 이런 부분은 제가 작품 흡수를 못했던 문제라고 생각하고요. 누구든 언제든 그런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가 중요하거든요. 우리 인생사가 늘 좋은 길만 갈 수 있는 게 아니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잖아요. 자유롭게 생각하고 싶어요."

영화 '마약왕'에서 하급 밀수업자에서 마약왕이 되는 이두삼 역의 배우 송강호. (사진=NEW 제공)
영화 속 평범한 생활과 욕망 사이 딜레마에 빠진 이두삼처럼 송강호 역시 배우의 길을 걸어오며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다만 모든 배우들이 겪는 어려운 시절을 지나오기는 했다.

"그냥 연기만 해 왔기 때문에 삶에서 큰 딜레마에 빠진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의 삶을 꿈꾸기 시작할 때부터는 다른 꿈을 꾼 적이 없었거든요. 연극을 할 때가 가장 위기였던 걸로 기억해요.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있어서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느냐 없느냐 기로에 섰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건 다른 배우들도 한두번씩 겪는 그런 일 아닌가 싶어요."

자연스러운 인터뷰처럼 송강호는 연기에 있어서 솔직한 진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화가 성공하면 가장 주목받는 이도 배우이지만 외로움과 고통을 달고 사는 것 또한 배우의 숙명이다.

"좋은 연기의 기준이 문법화 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배우가 얼마나 솔직하게 자신의 진심을 투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배우 생활에 행복만 있을 수는 없죠. 과정 자체가 달달한 것만은 아니고 외롭고 고통스럽거든요.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협업을 통해 작은 성취감을 이뤄냈을 때 오는 희열이 그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작은 힘이 되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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