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권민경 시인의 첫 시집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문학동네)를 펼친 독자들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그의 시는 '화상 자국 대중교통 공포증 코끼리를 탈 수 없는 죄책감 우두둑 뼈 꺾는 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헬리콥터'(트라우마와 지구의 끝' 부분·35쪽), '예고된 냄새. 썩은 생선 대가리와 감귤, 구토와 복숭아 향이 어우러진. 양말. 고민. 자책. 모낭염과 알레르기를 넣어서 오래. 증류한 냄새가 납니다. 카오리. 향기. 카오리카오리. 향향.'('Mic' 부분·73쪽) 등 서사가 아닌 이미지로 가득하다.
24일 연합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권 시인은 "미술에 정물화, 풍경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가 있듯이 언어로 하는 예술인 문학에도 다양한 기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권 시인은 자신의 시에 이미지가 많아 조금 난해하고, 소통이 불편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법이 자신이 가장 시를 잘 쓸 수 있는 방법이라며 "소통을 아예 배제하지는 않는다. 시를 아우를 수 있는 제목을 붙여 독자들에게 힌트로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시집에는 아픈 여자, 즉 권 시인 자신의 이야기가 다양한 이미지 속에 담겨 있다.
시집 속 제목의 면면을 살펴봐도 시인의 몸과 마음의 연대기를 짐작할 수 있다.
'거대한 물혹과 한쪽 난소를 떼어낸 후 / 고기를 먹을 때면 뒤적거렸어 / 동물의 아픈 부분을 씹을까 조심스러워 / 그게 내 몸 같아서'('종양의 맛' 부분·12쪽)
'오래 맘이 아파 병이었으나 몸의 병도 얻었다 / 스무 살 (…) 건방지게 동병상련이라니 / 임파선 떼어낸 데가 자꾸 조여와 / 예민해 있던 과거의 나에게 / 청혼하는 과정'('노루생태관찰원' 부분·70∼71쪽)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 / 큰 병에 걸리더라도 농담을 해주길. / 농담이 있으면 괜찮다.'('길' 부분·37쪽)
권 시인은 "지금은 건강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편인데 한창 아플 때는 죽음도 많이 생각했다"며 "하지만 돌이켜 보면 살아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면에서 출판사에서도 내 시집을 읽는 일이 '부푸는 생의 감각을 느끼는 일'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권 시인은 주변에 말하지 못한 내밀한 이야기를 시로 고백하면서 마음속 응어리를 털어낸다.
마치 대나무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듯 자신을 꺼내어 보이며 치유한다.
권 시인은 작가의 말에 "이 책의 시편들이 내게서 영영 떨어져 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 내 글을 마주하고 있는 낯설고 반가운 어깨, 감히 머리를 기댄다"고 적었다.
그에게 시는 몸에 붙어 있다가 떨어져 나간 듯이 소중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자신을 떠나 다른 이들에게 인사해야 할 존재이기도 하다.
"양면이 있는 시집입니다. 일부러 어두운 내용을 발랄하게 쓰거나 비속어를 찾아 쓰기도 했죠. 하지만 독자분들은 그냥 매우 즐거우셨으면 좋겠어요. 슬픈 얘기라거나 제가 가까이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으셨으면 해요. 친구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