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많은 둘째언니, 끝끝내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는 이유

[노컷 인터뷰] '어른이 되면' 장혜영 감독 ②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장혜영 감독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지난 13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의 장혜영 감독은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번 작품으로 장편 다큐 데뷔를 하기 전부터, 그는 '생각많은 둘째언니' 유튜브 채널과 트위터 계정을 운영해 왔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시사, 여성 문제와 정치, 읽은 책 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18년 만에 함께 살게 된 발달장애인 동생 혜정 씨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록한 것은 이번 '어른이 되면'의 출발이 됐다.

장 감독은 '도대체 이해 안 가는 세상을 그래도 이해해보고자 노력하는 둘째언니'라고 자신을 소개해 두었다.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별명만으로 호기심이 생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이해하려고 한다니 더 궁금했다. 대체 왜요?

흰 눈이 조용히 내린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어른이 되면' 장혜영 감독을 만났다. 혜정 씨와의 동거기를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책으로 냈고, 직접 곡을 쓰고 부르며, 전용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장 감독은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창작자라 불러도 손색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창작의 근원에 관해서도 물었다.

(노컷 인터뷰 ① '학습된 배려' 넘어 장애인을 '인간'으로 마주하기, '어른이 되면')

일문일답 이어서.

▶ 언론 시사회 때 '어른이 되면'은 결론보다는 질문하고 싶어 만든 영화라고 했다. 어떤 질문을 담고 싶었나.

관객마다 떠오르는 질문이 다르지 않을까. 장애 문제는 이렇게 되어야 한다, 장애인을 이렇게 대해야 한다 등 뭔가를 설득하고 싶은 욕망을 억눌렀다. 사실 디테일을 모르면 모르는 것 아닌가. (영화를 보고) 머릿속에 어떤 자국이 남아서, 살아오면서 장애 당사자를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고, 이런 화제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면 그때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질문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정해지지 않은 질문이어도 좋다. 레퍼런스가 없으며 말을 할 수 없으니, (저는 '어른이 되면'이란 작품으로) 최대한 구체적으로 일상적인 레퍼런스를 드리는 거다. 필연적으로 장애는 낯선 것이기 때문에. 장애 당사자와 가족들에게는 ('어른이 되면'이) 거의 전형적이긴 하지만. (웃음)

어떻게 같이 살아가면 좋을까 하는 다양한 생각의 변형이 각자의 삶마다 있을 것 같다. 그걸 여러 가지로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피하고 싶은 사람의 따귀를 때려서 '보세요'라고 하면 안 보고 싶지 않나. 그게 아니라, '봐도 될 것 같네' 하면서 자기가 고개를 돌려서 보았을 때 영화가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경쾌하게 가고 싶었던 것도, 질문에 답하는 힘은 결국 긍정적인 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의 한 장면. 혜영 씨가 연주하고 혜정 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시네마달 제공)
▶ '어른이 되면'은 올해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특별언급' 됐다. 그때 느낌이 어땠나.

상영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해서… 하하. (웃음) 관광하는 기분? (웃음) 바라는 게 없으면 이렇더라. 가서도 수상은 바라지도 않았는데, 특별언급을 해 주시더라. 끝나고 나서 심재명 대표님이 오셔가지고 '영화 진짜 잘 봤다. 개봉했으면 좋겠다'고 덕담해 주시고 갔다. 그때 '계 탔네'라고 생각했다. (웃음) 사실 현실감이 없다. 인생에서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고등학생 때 영화를 했는데, 그때는 모든 게 대단해 보이잖아요. 그래서 얼떨떨했다. ('어른이 되면') 스태프들한테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기뻤다. (웃음)

▶ 혜정 씨와 같이 지낸 이야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출발은 유튜브 브이로그(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였고, 책으로도 나왔고, 이번 다큐멘터리도 있다. 작업 방식이 다 달랐을 텐데 비교해서 설명해 달라.

표창을 던지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브이로그는. 전후좌우 맥락을 다 빼고, 일단 우리도 이 세계에 같이 살아가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꽂아 넣는 느낌? 그래서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전혀 몰랐다. 진짜 힘 빼고 했다, 담백하게. 저와 혜정의 일상에 부담이 가지 않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게 중요했다.

다큐는 내러티브를 한 번 풀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조금 더 노력이 많이 필요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훨씬 더 제가 많이 드러나는 것이지 않나.

그리고 책은 정말… '아, 이제 더 할 얘기 없어!' 하는 식이었다. (* 이때 장 감독은 두손 두발 다 들었다는 듯 안경을 벗었다) 영상도 도망갈 곳이 없는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책이야말로 도망갈 수 없더라. 문장 마지막에 점을 찍으면 제가 그렇다고 얘기한 거니까, 뒤에 가서 '난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어'라고 할 수 없더라. 제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세계,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거라서 굉장히 어려웠다. 혹시나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를 생각하며, 스스로 긴장감을 놓지 않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 영화에 쓰인 곡들이 좋았다. OST로 나왔나.

네, 발매했다. 음원 사이트에 3곡이 올라가 있다. 유인서 음악감독 덕이다. 감사하게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있더라.(* 현재 음원 사이트에는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아니야' 3곡이 공개돼 있다)

장혜영 감독은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사람들에게 다양한 소재로 말을 건다. 혜정 씨가 등장하는 브이로그 영상도 올라온다. (사진=유튜브 캡처)
▶ 음악 작업은 원래 음악을 좋아해서 한 건가.

이번 작업을 하면서 처음 한 거다. 대부분 일기 문장을 조금 다듬은 것들이다. 저는 사실 되게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는 습관을 지닌 사람이다.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그 일이 잘 안 풀렸을 때의 극단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사람이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 일이 벌어져도 하고 싶을 정도로 정말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있다. 후회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저의 불안은 극단적인 상상이 되곤 하는데, (곡으로 만들면) 내면에 있는 불안을 외화하는 거니까 훨씬 낫더라. 진짜 마음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들에게 불안을 내보이는 건 약해 보여서 안 하려고 하지만, 제 일기는 제게 거짓말을 하지 않듯이.

사실 다 불안에 대한 얘기들이다. 그런데도 한 번 더 다정해져 볼까, 기운을 내볼까 하게 되는 다짐이다. 그 마음을 외우고 싶었다.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얘기를 했더라, 하고. 절망의 한가운데서 기억하기 쉽게 노래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라는 문장을 쓰고 나서, 여기에 공감할 것 같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좋았다.

노래에 제가 의도한 맥락도 있지만, 사람들 사이를 다니면서 그 이상으로 해석되는 게 저는 되게 뿌듯하더라. 텍스트를 생산한 건 나여도, 저건 저것의 독자적인 생명을 얻었구나 싶었다. 이건 이거다, 저건 저거다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제가 죽더라도 (노래는) 이야기로 살아서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그러길 바란다.

▶ 트위터와 유튜브 소개 글에 '도저히 이해 안 가는 세상을 그래도 이해해보고자 노력한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왜 이해하려고 하나.

진짜 이해가 안 간다. 그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는데 왜 아직도 이 모양이지 하는 게 기본적으로 제 궁금증이다. 그건 진짜 순수한 호기심이다. 왤까. 물론, 이 세상이 이 모양인 것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게 많다는 것도 되게 놀랍다. 이런 게 '당연하잖아' 하는 분위기에 있으면 되게 외로운 기분이 든다. 어쨌든, 뭐랄까 답을 찾고 싶다. 저 나름대로. 사는 게 뭔지, 어떻게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하다.

전인권 선생님 노래 중에 '새로움을 잃어버렸죠'라는 가사가 있지 않나. 그게 굉장히 마음을 파고들었다. 대부분 새로움을 많이 잃어버리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최첨단 미래에 가까운 현재에 살고, 심지어 미래도 예측이 가능하다. 빠져나갈 데가 별로 없다는 절망감이 있기 때문에 새로움을 거의 잃어버릴 수밖에 없고. '지금 내가 하는 건 전혀 특별하지 않아. 이걸 통해서 그 이전에 있던 것과 질적으로 완전 다른 변화가 일어날 리가 없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드는 건, 수천 개의 유튜브 중 하나다. 그건 되게 슬픈 건데, 여우의 신 포도라고 할까? '어차피 저 포도는 실 거야' 하는 기분으로… (웃음) 저도 되게 많이 그랬지만, 이제는 새로움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사람들을 많이 응원하고 싶다. 지금 만나는 사람을 최선을 다해서 존중하고 싶다.

'어른이 되면'의 장혜영 감독. 앉은 자리 뒤로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라는 글귀가 보인다. (사진=황진환 기자)
▶ 여러 가지를 만든다. 영상을 찍고, 기획하고, 장편 다큐를 개봉했다. 책을 쓰고, 음악도 만든다. 창작의 근원은 무엇인가.

감히 얘기한다면, 동료 시민에 대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사람의 일을 해결하지 않나. 사람이 사람의 힘으로 산다는 걸 많이 느낀다. 이제 민주정으로 왔으니까,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에 대한 책임을 진다면 신과 종교가 아니라 결국 우리가 져야 할 거다. 그런데 무언가를 함께 해결해 나가기에 서로를 너무 모른다는 걸 안다.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진짜 다를 때 의외로 호감 갖기 쉽지 않은 것 같다. '왜 너는 나와 생각이 달라?' 하면 특히 되게 서운해지더라.

이해하고 싶다. 왜 우리가 이렇게 가면 안 되는지, 얘기하기 위해서 알고 싶고. 그래서 창작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모든 사람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면 좋겠지만 이건 되게 운이 좋은 것이니까. 내 생각을 작은 꾸러미로 만들어 다른 사람도 만날 수 있어서, 그 이후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음악을 해야지, 영화를 해야지 이게 아니라 그때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관해 꾸러미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에 놓는 거다.

▶ '어른이 되면' 개봉 인터뷰이니, 마지막은 영화 얘기로 하겠다. 관객의 N차 관람을 북돋을 수 있는 홍보 부탁한다.

오프닝 시퀀스 안에 뭔가에 대한 은유가 사실은 되게 가득 들어있다. 이게 그거랑 연결되는구나, 할 것이다. (웃음) 어디까지 찾아내실 것인지 궁금하다. 또, 싱어롱 상영을 준비하고 있다. 혜정 생일이 24일인데 그전에 싱어롱을 할 생각이다. 영화에 나오는 노래를 부른다. GV 대신에 공연을 하고.

장애 인권 쪽에서 오랫동안 이뤄졌으면 하는 것들이 잘 안 된 연말이기 때문에 마음이 쓰린 사람들이 있을 거다. 하지만 다시 한번 기운을 내야 또 할 수 있으니까. 어쨌든 우리에게는 음악과 친구들의 힘이 있으니까, 그거로 다른 사람들을 많이 격려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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