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소속된 업체 역시 숨진 청년이 다니던 회사와 마찬가지로 사고 책임을 하청이 떠맡는 전형적인 갑을계약을 원청과 맺고 있는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확인됐다.
◇ 컨베이어 벨트가 흉기로 변하는 이유
반면 바로 옆에 있는 1~8호기의 경우 여전히 정상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부발전 측이 이곳의 석탄운송 설비는 '한전산업개발'이라는 다른 하청업체와 별도의 계약을 맺고 있는 까닭이다.
문제는 이곳 역시 숨진 김씨가 근무했던 곳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상당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1~8호기 석탄운송용 컨베이어 벨트는 각 20여명으로 편성된 4개조가 한 번에 12시간씩 근무하고 있다. 관리자 등을 제외하고는 1~4호기 쪽에 10명, 5~8호기 쪽에 10명이 편성된다.
인력 부족 탓에 여전히 2인 1조 지침은 무시된다. 직원들은 각자 맡은 구역을 혼자서 도보로 순찰하며 주변에 떨어진 석탄 등을 삽이나 소방호스 등을 이용해 치우고 있다고 한다. 1명당 하루에 걷는 거리는 최소 15㎞ 정도 되고 20㎞를 넘는 경우도 상당하다.
김씨가 맡았던 것과 같은 '컨베이어 운전원'을 1~8호기에서 하고 있는 한 동료 직원은 14일 퇴근 직후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점검하려면 어쩔 수 없이 설비 쪽으로 가야 하는데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이어 "손만 뻗으면 회전체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공간에 항상 있다 보니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주변에 있던 동료가 그렇게 된 걸 보니 놀랍고 순찰 자체가 힘들다"며 "동료들 모두 힘들어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서부발전은 14일에서야 하청업체에 소속 직원의 2인 1조 근무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점검 대상을 '모든 현장'으로 확대해 사실상 대부분의 작업 현장에서 2인 1조로 근무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이에 따른 비용과 시간외 근무수당은 추후 정산할 예전이라고 서부발전은 밝혔다.
◇ "원청은 하청에, 하청은 개인과실로"
한국서부발전이 국회 산자위 소속 박정 의원실에 제출한 용역계약서를 보면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 교육도, 위험요소 제거와 설비안전을 위한 조처도 모두 하청업체 책임에 맡겨져 있다.
원청의 설비나 자료 일부의 관리 책임이 하청에 맡겨진 탓에 해당 시설이 훼손됐을 때 하청이 자체비용으로 갚아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특히 하루라도 시설을 멈추면 하청업체가 가동중단 시간에 따라 보상금을 물어야 하고 용수·전기·연료 등 복구 과정에 드는 유지비용도 물어야 한다.
'하청 귀책일 경우'라는 단서조항이 달려 있긴 하지만, 노조 측은 하청업체가 이런 조항을 의식해 그동안 여러 차례 있었던 산업재해를 축소 은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1~8호기에서 20여년 근무중인 이태성 발전비정규직 연대회의 간사는 "회사는 이런 이유로 중대재해가 아닐 경우 산재처리하지 않고 넘겨왔다"며 "원청은 하청에게 떠밀고, 하청은 개인과실로 치부하는 행태가 발전소에는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도 회사는 '될 수 있으면 컨베이어 밖으로 떨어진 석탄을 위험하게 치우지 말라'는 식으로만 얘기한다"면서 "하지만 설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순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