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먹거리 가격인상…소비자는 괴로워

(사진=자료사진)
불경기와 금리인상 등으로 소비자의 가처분소득은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추세지만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수 없이 구매해야 하는 먹거리 가격은 하루가 멀다하고 오르기만 해 연말연시가 소비자들에게는 강추위 만큼이나 우울하다.

지난 8월 우유값 인상을 시작으로 시동이 걸린 가공식품 가격인상은 끝간데 없이 계속되고 있다.

가공우유가격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온 서울우유가 흰우유 가격을 올리자 시차를 두긴 했지만 남양유업과 빙그레의 우유 가격인상으로 이어졌다. 업계에서는 매일 등 나머지 우유제조 업체의 가격인상도 시간문제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어 가격인상 도미노는 2019년 연초까지도 지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공식품의 특성상 1개 품목의 가격인상은 필연적으로 연관산업 제품의 가격인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어 소비자가 느끼는 물가부담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우유값이 오르면 우유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제과나 커피값이 꿈틀거리게 된다. 실제로 이디야 커피와 롯데 엔제리너스 커피는 최근 가격인상을 단행하면서 "건물 임차료와 원료비 같은 고정비용의 인상폭이 커 가맹점들이 운영난을 겪고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파리바게트나 뚜레쥬르 등 제빵업계에서도 가격인상의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파리바게트 관계자는 12일 "빵을 만드는 재료가 우유, 설탕, 밀가루도 있고 임금비도 있다"며 "1개 원재료 가격이 올랐다고 가격을 올린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정기간이 지나고 이게 누적이 되면 원가율이 상승해 가격을 올릴까 말까 결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위당 가격이 싸서 국민들이 손쉽게 소비할 수 있는 과자류와 아이스크림 가격은 고삐가 풀렸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너도나도 가격인상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과자업계의 1,2위를 다투는 롯데와 농심, 해태제과 등이 스테디셀러인 새우깡과 부라보콘 등의 가격인상을 단행했다. 농심은 스낵류 19개 제품가격을 무더기 인상해 '가격인상 분위기에 편승해 과도하게 올린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식음료와 유통에 특화돼 소비자 접촉면이 넓은 롯데그룹은 올 한해 가격인상에 나선 계열사가 많았다. 올해 초중반 롯데제과와 롯데푸드에 이어 하반기에는 롯데리아와 엔제리너스, 롯데월드 등이 제품과 서비스 가격을 올렸다.

제과업계에서 내세우는 가격인상 이유는 임금 상승과 원재료값 상승이다. 2018년 최저임금이 16.4%인상돼 판촉사원 급여 증가 등 임금으로 인한 비용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10%를 넘는 새해에도 사정이 다르지는 않다. 그래서 물가상승 도미노가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되리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다.

농심관계자는 "임금도 원가를 결정하는 하나의 부분이기 때문에 딱 찝어서 얘기하긴 어렵지만 본사 임금비 인상 외에도 협력업체 인금인상, 거래업체 판촉행사 추가고용 비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비용이 더 소요되고 가격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원재료나 임금비 요인 말고도 식음료업계가 가격인상의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다름아닌 박한 이윤이다.

식음료업계의 제품 제조판매 마진율은 전체 산업 가운데 가장 낮은 편에 속해 혁신이나 신제품 개발을 통한 이윤창출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여기에다 국민들이 애용하는 먹거리이기 때문에 고가전략이 먹힐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은 것도 업계가 겪는 고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12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식음료업계의 수익률은 1~4%수준이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의 성장률이라도 유지하려면 원가 조달비용의 현실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가격인상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워낙 심해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다 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인상은 프랜차이즈 형태로 영업하는 치킨업계가 가격을 인상이유로 내세우는 단골메뉴가 됐다. BBQ는 지난달 치킨값을 마리당 최대 2000원 올리면서 "임금비와 임대료 상승, 콜라값, 무값 등 원자재값이 다 올라 가맹점주들의 가격인상 요구가 많았다"고 밝혔다.

◇ 소비자 "너무 올라 이젠 가격에 둔감할 지경"

식음료 가공업계에서도 견딜 만큼 견딘 다음 어렵사리 가격을 올리지만 가벼워진 주머니를 더 털어내야 하는 소비자들은 불만을 쏟아낸다. 회사원 김 모씨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 전체적으로 가격이 올랐을 때는 너무 비싸다 생각했지만, 너무 올라 이제는 가격에 둔감해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1인가구의 증가와 SNS 등을 통해 신메뉴, 맛집 이런 키워드에 민감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식음료에 돈을 쓰는 개념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지출증가를 당연시 여기게 됐고 이 심리를 이용해 가격을 올리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회사원 B씨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새우깡. 바나나우유 등등 과자마저도 이런 어려운 경제에 인상을 하니 우리 같은 서민은 과자도 쉽게 사먹을 수 없게 됐다. 질소포장으로 양도 줄어들고 가격만 인상되는 현실이네요"라고 말했다.

주부 L씨는(서울시 양천구) "가격이 많이 올라서 기분 안 좋다"며 "당분간 안 사먹을 거지만 결국 얼마 안가 사 먹게 되는 상황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업체들이 원가부담을 견디기 어려워 가격을 올리는 걸 두고 뭐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동안 꼭 연말연시에 한꺼번에 올려온 관행이 소비자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돌아가게 되는 건 사실이다. 특히나 올해 연말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가격인상의 원인 가운데 커다란 부분 한 가지는 임금인상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업체에서 아무리 임금인상 때문에 가격을 인상한다고 해도 사실을 확인해볼 도리가 없다. 어떤 업체에서도 세부적인 내역을 공개해 소비자를 납득시킨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기업이 '가격을 높이 책정하면 외면받고 내리면 많이 팔린다'는 수요공급의 법칙에만 맡겨두기엔 시장의 가격인상 강도가 너무 강하다. 원재료 가격의 인상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나 조정 역할이 다방면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유독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돌아가는 가격결정 부분에서는 역할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 부담이 늘든 말든 가격결정에서만은 신자유주의적 원칙을 유지하는 것인지, 과거정권의 유물이라 적폐로 치부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서민들을 위해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 가격인상의 시기를 순차적으로 조정하거나 합리적인 가격인상을 유도하는 등의 최소한 개입의 여지는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