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은 지난 7월 '두부 값(전력)이 오히려 콩 값(원가)보다 싸졌다'는 비유로 전기료 인상의 총대를 멨다.
지난해 4분기부터 적자행진을 면치 못하던 한전의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한전은 3분기 들어서는 흑자로 돌아섰지만 전년동기대비 절반 수준에 그쳤다.
김 사장은 이후에도 국회 국정감사나 기자간담회 등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전기료 인상, 최소한 개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지난 10월 국감에선 "가장 좋은 방법은 원가연동제로 하는 것이 가격 시그널이 확실하겠지만 그게 안 되는 상황에서는 연 1회라도 정기적으로 검토를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한전은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017회계연도 연차보고서에서도 전기료 인상론을 폈다.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이 입수한 이 보고서는 "탈원전 및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재무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면서 "이런 비용 부담에 상응하는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을 기대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한전 관계자는 "적자를 메워야 하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이라며 "보고서의 내용 그대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현 정부 임기 내에는 에너지 전환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전이 희망하는 원가연동제에 대해서도 검토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에서 전기요금을 인상할 때가 됐다"며 여당발 인상론에 불을 지폈다.
물론 이는 이 의원의 개인 의견으로 치부되며 사그라들었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실제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워킹그룹도 최근 요금 인상에 무게를 싣는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워킹그룹은 공급비용이나 사회비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낮은 전기요금이 전력수요를 증가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내년까지 요금체계 개편을 위한 로드맵 수립을 주문했다.
한전 주가가 최근 강세를 보이는 배경에는 유가 하락 등에 따른 실적 개선 기대감 외에 전기료 인상 전망도 작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역시, 정책적 요소가 강한 현행 요금체계 개편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선뜻 결정에 나서기는 쉽지 않은 상태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 산업계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의 회장단은 지난달 12일 성윤모 산업부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전환 정책이 전기요금 인상 또는 산업경쟁력 약화 요인이 되지 않도록 산업적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백재현 민주당 의원의 경우는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보고서를 토대로 "산업용 전력요금 인상의 경우 전력소비 감축 효과가 크지만 총생산이 크게 하락하며 이 충격이 12분기(3년) 가량 지속한다"며 신중한 대응을 주문하기도 했다.
전기료 인상이 탈원전 정책 탓으로 비춰지며 비판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정부·여당으로선 부담이다.
야당 일각에선 전기료 인상 공론화를 요구하며 탈원전 비판의 후속타로 이어가려는 분위기다.
정부는 다만 주택용 요금의 경우는 누진제 폐지를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전향적인 개편에 나서기로 했다.
누진제 개선 방안을 논의할 민관 태스크포스(TF)는 11일 첫 회의를 갖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