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블랙리스트' MB정부 때 있었다

2008년 촛불 이후 경찰청과 청와대 블랙리스트 작성
인권위 '좌파 단체'로 낙인… 견제 및 사후관리 시도
MB 등 관련자들 검찰에 수사의뢰하기로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실제 있었던 것으로 인권위 자체 조사에서 드러났다.

인권위는 11일 오후 브리핑을 열고 지난 2월 혁신위원회가 권고한 '인권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인권위는 명확한 사실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자들을 올해 안으로 검찰에 수사의뢰하기로 했다.

◇ 인권위, MB 청와대·경찰 블랙리스트에 오르다

인권위는 조사 결과 청와대와 경찰청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권위 블랙리스트'가 실제로 존재했다고 결론내렸다.

지난 2008년 인권위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대해 경찰의 인권침해를 인정한 뒤 이런 블랙리스트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인권위는 밝혔다.

경찰청 블랙리스트는 2008년 정보국이 작성한 이른바 '현안참고자료'라는 청와대 보고문건이다.

이 문건은 인권위 직원을 진보·보수 등으로 분류하고 인권위의 이념적 편향성을 조정해야 한다며 별정직·계약직 직원의 인원 감축을 유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권위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 등을 바탕으로 판단할 때 참여연대 출신, 진보성향으로 분류된 인권위원과 인권위 직원 5명 등이 블랙리스트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추정했다.

◇ "MB정부와 함께 갈 수 없는 사람들"… 청와대 비서관, 블랙리스트 전달


블랙리스트는 경찰청뿐만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도 만들어졌다고 인권위는 보고 있다.

인권위 조사결과,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은 지난 2009년 10월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인권위 김옥신 전 사무총장에게 '이명박 정부와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는 사람들'이라며, 촛불집회 직권조사 담당조사관이었던 김모 사무관 등 10여명이 포함된 인사기록카드를 전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옥신 전 사무총장이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이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라는 의미로 생각했다"고 진술한 점 등을 바탕으로 판단할 때 인권위는 해당 문건이 블랙리스트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영포빌딩 문건 중 언론에 보도된 '2010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업무계획 보고문건'의 존재가 확인될 경우, 마찬가지로 블랙리스트에 해당된다고도 밝혔다.

해당 문건에는 '인권위를 문제위로 낙인찍고, 정비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MB 정부, '눈엣가시' 인권위 직원 축출·사후관리 시도

인권위는 MB정권의 '인권위 블랙리스트' 작성 목적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때 인권위가 적극 나섰기 때문으로 봤다.

표적 감사 논란과 이를 통한 조직 축소, 직원 면직 등으로 인권위를 정권 맞춤형 조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인권위 자체 결론이다.

인권위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문건에 이름이 포함된 사람들의 인격권,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양심의 자유 등 기본적인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이명박 정부 관계자들이 인권위를 통제할 목적으로 공무원들에게 불법적인 지시를 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것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될 수 있다고도 판단했다.

인권위 조영선 사무총장은 이러한 행위가 "인권위의 독립성을 심각히 훼손하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인권위는 2009년 당시 청와대 블랙리스트에 대해 인권위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고, 2012년 언론보도를 통해 해당 사건을 알게 된 뒤에도 진상조사 등의 적극적 대응을 하지 않아 스스로 독립성을 훼손한 잘못을 반성한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인권위가 지난 정부에서 이러한 행위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스스로 독립성을 약화시켰다"며 "정부에 부담을 주는 안건들에 대해 인권위가 역할을 충실히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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