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기쁘다고만 할 수 없는 결론이었어요. 미쓰비시 사건의 경우 18년 6개월 만에 판결이 선고됐는데 그 사이 당사자였던 할아버지들이 다 돌아가셨어요. 대법관의 입을 통해 나오는 '피고의 상고를 기각한다', 단 10초도 안 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나는데 그 짧은 순간을 18년 넘게 기다렸다는 게 슬프기도 하고 기쁘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김 변호사)
"저희가 변호사가 되기 훨씬 더 이전에 제기된 소송들인데요. 선배 변호사들이 해오던 사건에 막내인 저희가 마지막 대법원 선고 시기에 참여해 함께 있었을 뿐입니다."(임 변호사)
두 사람은 최근 대법원 판결이 잇따라 난 2건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해마루의 '막내' 변호사들이다. 미쓰비시 중공업 상대 소송의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 해마루 서울사무소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갖는 의미에 대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피해가 사법적인 절차를 통해 확인됐다"며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일본 기업은 이분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점이 명확하게 확정됐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지연된 정의"라고 평가하면서 "안타까운 건 이 문제에서 한국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대부분이 돌아가신 뒤에야 법원의 판단이 이뤄져 일본 기업과 정부에 책임을 묻는 상황에서 우리 공동체의 책임이 결코 간과될 수 없다고 봅니다." (임 변호사)
두 사람은 10월 30일 대법원의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지난달 12일 도쿄 신일철주금 본사를 찾았다.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방문이었지만 문전박대를 당해야 했다.
"힘없고 뺏긴 사람들이 먼저 '얘기 하자'고 호소하고 결국 그 큰 문 앞에서 막혀서 돌아오는 것을 이젠 좀 그만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전혀 바뀐 것이 없어서 안타까웠습니다." (임 변호사)
문전박대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신일철주금의 본사를 방문한 날, 일본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이른 아침부터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서 신일철주금의 배상을 촉구하는 유인물을 시민에게 나눠주며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힘을 보탰다.
김 변호사는 "매주 그렇게 하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받아들여 지지 않는 목소리' '만나주지 않는 방문'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완강한 입장에 비춰볼 때 일본 기업들이 배상 판결을 이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상황. 이에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대리 배상을 하거나 한국과 일본이 공동 기금을 마련해 배상하는 방식 등 대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임 변호사는 "일본 기업이 대부분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안이 검토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은 강제징용 배상을 명령한 대법원 판결에 일본 정부가 반발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역사적 '팩트'에 반박할 수 없도록 관련 자료를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이 아니라 조선 반도 출신의 노동자라는 표현을 썼거든요. 역사 왜곡이죠. 조약(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대한 해석은 개별 국가마다 다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법률 해석과 다르게 역사적 사실은 그 무엇보다도 국가가 지켜야 할 진실입니다. 진실을 왜곡하는 건 반박해야죠. 그러려면 구체적이고 충분한 근거가 바로바로 제시될 수 있을 만큼 쌓여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많은 자료가 있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임 변호사)
김 변호사도 "정부는 하루빨리 피해자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직접 듣고 자료로 남기는 작업을 해야 한다"면서 "어떤 방식의 해결로 가는지와 관계없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최근 신일철주금 소송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94) 할아버지를 만나고 왔다.
"할아버지는 (소송을) 어서 빨리 해결해 달라고 하셨어요. '고기도 좀 사 먹고 손자들에게 돈도 좀 주고 싶다'고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그 돈 받아서 뭐하겠습니까. 피해배상금을 어떻게 받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