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아이스케키 팔다 연매출 3조 기업 회장으로…개혁·개방의 홍색자본가들 ⓶ 中 개혁·개방의 조력자, 외자기업의 명과 암 ⓷ “광저우·선전 부럽지 않다”, 무섭게 성장하는 中 2선 도시 ⓸ 강주아오 대교가 품은 중국몽과 냉엄한 현실 |
2018년 중국의 최남단 광둥(廣東)성은 중국 매체와 정치권의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지역이었다.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중국의 진정한 개방이 최초로 이뤄졌던 지역이라는 상징성이 빛났다. 여기에 올해 초부터 격화되고 있는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광둥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예상치 않는 효과도 가져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0월 말 광둥성을 방문해 하이테크산업지구와 세계 최대의 에어컨 제조업체인 거리(Greeㆍ格力)사를 방문하는 등 경제일선을 시찰하고 주하이(珠海)시와 마카오, 홍콩을 연결하는 강주아오(港珠澳) 대교 개통식에 참석하자 중국 관영매체들은 이를 '신(新) 남순강화'(南巡講話)‘라 칭하며 큰 관심을 나타냈다.
덩샤오핑은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이 발발한 여파로 중국 정치권에 보수파가 득세하며 개혁개방 노선에 제동을 걸려 하자 1992년 구순의 노구를 이끌고 광둥성을 방문해 개혁·개방을 재촉구하며 불씨를 살렸다. 시 주석 역시 미국이 보호무역 주의로 돌아서고 중국을 압박해 중국 경제가 위기에 봉착하자 과거 덩샤오핑을 연상케 하는 행보를 펼친 것이다.
40년 동안의 개혁개방이 중국이라는 나라를 ‘인구만 많고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완전히 다른 존재로 뒤바꿔 놓았다는 것은 수치가 증명한다. 덩샤오핑이 1978년 경제개혁을 시작했을 당시 중국의 경제규모는 미국의 5%에 불과했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잠비아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아프리카 평균의 3분의 2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개혁·개방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중국은 2014년까지 연평균 GDP 증가율 10%라는 기적적인 성장을 이어왔다. 1인당 GDP는 1978년 155달러에서 2017년 8582달러로 50배 이상 증가했고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1978년 1.8%에서 2018년 18.2%로 증가했다.
광둥성에 산재한 수많은 민영기업들의 창업자 대부분은 이같은 중국 개혁·개방 정책의 성과가 탄생시킨 홍색자본가들이다. 중국 내에서 에어컨 시장 점유율 6위의 즈가오(志高·CHIGO)사를 키워낸 리씽하오(李興浩) 회장도 수많은 홍색자본가들 중 하나다.
리 회장은 80년대 초반부터 여러 기업들을 세우고 정리하며 자본가의 능력을 키워왔다. 그는 “1982년 개혁·개방 정책의 봄바람을 타고 플라스틱, 철물, 전자, 식당, 냉방보수공사 등 분야에서 10여 년간 8개 회사를 만들어 모두 돈을 벌었다”고 회고했다.
고향인 광둥성 포산(佛山) 에서 농사를 짓던 리 회장은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사유재산을 인정하자 28살 되던 1982년,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아이스케키 장사를 시작하며 이른바 ‘홍색(紅色) 자본가’의 길로 들어섰다. 중국 경제의 계속된 호황 덕에 점차 자본을 축적한 리 회장은 1994년 즈가오 에어컨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제조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즈가오는 같은 기간 중국 경제 성장 만큼이나 초고속으로 성장했다. 1998년 직원 7명으로 수출부를 만들고 본격적인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을 때만 하더라도 레바논에 OEM(주문자생산방식)으로 에어컨을 수출하던 것이 다였다. 하지만 이듬해 유럽 시장 진출을 시작으로 중동, 동남아, 아프리카, 미주 지역 120여 국 진출에 성공한다.
현재 즈가오는 삼성, LG, GM 등 세계 500대 기업과 제휴를 맺고 200여국 에어컨을 수출하면서 지난해 달성한 매출액만 200억위안(한화 약 3조2천3백억여원)에 이른다.
굳이 알리바바의 마윈(馬雲)이나 텐센트의 마화텅(馬化騰) 회장과 같은 신화적 성공 스토리가 아니더라도 리 회장과 같은 ‘평범한(?)’ 성공 사례를 찾기란 중국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광둥성에서 만나본 창업자들 상당수는 리 회장과 같이 개혁·개방이 시작됐던 40년 전 청운의 꿈을 안고 사업에 도전했던 이들로 중국 정부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 회장 역시 자신을 개혁·개방 정책의 경험자이자 수혜자, 그리고 증인이라며 “개혁·개방 없이는 현재의 리씽하오도, 즈가오 에어컨도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국가와 공산당에 대한 강한 충성심을 갖고 있으며 40년간 실패보다는 성공에 익숙해져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민영기업 창업자들 가운데서는 보잘 것 없는 학력이나 집안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성공을 일궈낸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보니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승부를 거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과의 무역분쟁에 대해서도 우려보다는 어떻게든 활로를 찾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각이 상당했다. 이들 홍색 자본가들의 창업가 정신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뒷받침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리씽하오 회장 인터뷰 |
=공산당은 우리를 공평하게 대했고 안심하고 기업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줬다. 80년대 초부터 창업을 시작해서, 나는 중국 개혁·개방 정책의 경험자이자 수혜자이고 증인이다. 민영기업, 제조업 발전에 대한 당과 정부의 지지에 감사한다. 개혁 개방 없이는 나 리씽하오도, 즈가오 에어컨의 오늘도 없었을 것이다. 개혁·개방은 우리의 잠재력을 발전시키고 폭발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나는 아이스케키 장사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3만명 종업원들이 일하고 있는 대기업을 이뤄냈다. 이것이 바로 중국 개혁·개방 정책의 성공을 증명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 즈가오는 언제부터 세계시장에 진출했나? 그리고 중국 가전기업이 해외 진출하는데 있어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은 무엇인가? = 상대적으로 풍부한 이익과 넓은 시장 전망이 즈가오 에어컨이 글로벌 진출을 원하는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1998년 직원 7명으로 수출부를 설립해 레바논에 OEM 방식으로 수출했고 이듬해 유럽 진출에 성공했다. 곧이어 빠르게 중동 동남아 아프리카 미주 등 120여 개국에 진출했다. 개혁·개방으로 통관이 간소해지고 수출이 편리해지면서 많은 나라에 진출할 수 있었고 우리 생산품을 통해 우리 문화와 제품을 많은 나라 소비자들에게 제공했다. 우리의 용기와 품질, 창조력을 통해 전 세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결국 전 세계시장에 에어컨을 팔았을 뿐만 아니라 즈가오 브랜드도 인식시킬 수 있었다. 진출한 몇몇 국가에서는 시장점유율 1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 중미 무역전쟁이 중국 에어컨 업계에 미칠 영향은 어떻다고 보는가? =우리 자금 흐름이 불안해지고 미국이 관세를 올리면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런 상황은 보편적인 것이다. 경영인은 언제나 도전을 감수해야 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게 능력이다. 물론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제일 좋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