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처럼 쇼핑몰이 쉴 경우 그 고객들이 주변 영세상가로 발길을 돌릴 것이란 검증되지 않은 추측에 근거해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3년부터 대형마트 출점과 휴무 규제가 시작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 가운데 하나는 소비자들이 '마트 문닫는 날'을 따져보기 시작했다는 것. 1주일 단위로 이뤄지는 소비와 생산 사이클 속에서 쇼핑의 대안을 찾지 않으면 간혹 쇼핑처를 찾아 헤매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서울 양천구의 경우 매월 둘째,네째주 일요일이 휴무여서 이날은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는 물론이고 SSM과 이웃 영등포구의 외국계 할인점 코스트코까지 한꺼번에 문을 닫는다. 이 경우 소비자 선택은 2가지, 쇼핑을 다음주로 미루거나 대안 쇼핑장소를 물색하는 일이다.
◇ 규제의 승자는 '전통시장 영세상인'이 아니었다
대안쇼핑 장소는 대형마트 주변 영세상가나 전통시장이 아니라 마트 주변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대형슈퍼나 식자재 마트'다. 이를 입증하는 복수의 조사결과도 나와 있다.
처음에는 지역상권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럭저럭 불편을 감수했지만 제도시행 후 잇따라 나온 연구나 설문조사에서 '강제휴무가 골목상권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근거가 나오자 '휴무정책에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경기 과기대 조춘한 교수가 지난 9월 발표한 '상권내 공생을 통한 골목상권 활성화방안' 연구에 따르면, 대형마트 반경 3km이내 상가들의 매출동향조사에서 의무휴업을 하지 않은 날의 매출을 100으로 했을 때 의무휴업일 매출은 91로 나타났다. 오히려 감소했다.
특이한 것은 대형마트와 매출 5억원이하 소규모 점포매출은 감소한 반면 50억원 이상의 슈퍼마켓 매출액비중이 7.07%늘어났다. 조 교수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50억이상의 대형슈퍼마켓의 매출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지만 5억미만의 소형슈퍼마켓의 매출액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규제의 목적이 대형마트를 쉬게함으로써 소상공인 가게를 돕겠다는 것이었지만 엉뚱한 대형슈퍼마켓이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
조 교수 조사는 한국중소기업학회 의뢰로 2013년~2018년6월 카드거래 빅데이터 전체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조사대상지역은 24개 대형마트 상권이었고, 상권내 모든 상가와 A사(社) 카드(점유율 24%) 소지자가 조사대상이었다.
유사한 조사도 있다. 2014년 실시된 한 소비자조사(출처=전경련)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이후, 조사응답 소비자의 38%는 중대형 슈퍼마켓을 이용했고 24%는 다른 요일에 대형마트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 "피해가 있을 거란 가정하에 이뤄진 규제는 의미없어"
그는 대형마트 규제의 반사이익을 대형슈퍼마켓이나 식자재마트가 본 것처럼 "쇼핑몰 규제의 반사이익은 가까운 해외여행 급증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했다.
쇼핑몰 영업규제가 추진되자 해당업계에서도 쇼핑몰의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A유통업체 관계자는 "주말에 재래시장을 갈 것인지, 대형마트를 갈 것인지, 복합쇼핑몰을 갈 것인지는 소비자의 선택권이며 골목상권 보호와 동등하게 보호돼야 할 권리"라고 주장했다.
역대급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7월 주말 하루동안 강남의 롯데월드몰을 찾은 방문객 숫자는 21만명이었고 하남 스타필드 방문객은 12만명으로 20%가량 증가했다. 이에대해 롯데몰 관계자는 "하루 방문객은 21만명으로 폭증했지만 매출증가는 0.2%에 그쳐 쇼핑몰이 여가생활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나타내준다"는 주장을 폈다.
주 5일제 정착과 52시간제 시행으로 여가를 즐기려는 트렌드가 강해지고 자연스럽게 문화.외식,엔터테인먼트를 한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몰링' 선호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 실타래 이해관계에 멈춰선 쇼핑몰 규제 논의
정치권은 대형마트처럼 복합쇼핑몰에 대해서도 출점과 영업시간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방안을 논의중이지만 재래상권이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도시와 농촌지역간 이해관계가 달라 이견조정은 산넘어 산인 상황이다.
경남 창원시에서는 특정 복합쇼핑몰 입점을 추진하는 시민들이 서명운동을 전개한 바 있고 서울 마포.은평구에서도 상암동에 복합쇼핑몰을 유치하기 위해 '서부지역발전협의회'란 카페를 만들어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국회의 입법은 장기화할 조짐이다.
복합쇼핑몰 영업규제는 2013년 대형마트 영업규제의 후속조치로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본격화됐다. 법안의 핵심내용은 대규모 유통점의 출점제한, 복합쇼핑몰 의무휴업일 지정 등 대기업 유통자본에 대한 규제강화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대형 유통기업들의 복합쇼핑몰 진출 확대로 지역상권 붕괴가 가속화되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법안발의 이유를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조경태 의원의 '대형마트 신규출점 허가제'안과 정유섭 의원의 '3km이내 신규출점 협의의무화'안을 거론하며 국회에 계류중인 30여개 법개정안 가운데 가장 강력한 내용을 담은 법안이 야당에서 나온 것이라며 야당의 반대로 법안심사가 지연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유통산업발전법은 국회 산업위 법안소위에 넘어가 있지만 여야간, 의원간 이견이 첨예해 법안심사를 시작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다. 국회 관계자는 "복합쇼핑몰 규제는 여야간, 지역간 입장차가 복잡하게 얽혀 연내법안처리가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상권규제정책이 시행된지 5년이 지난 만큼 정책효과를 꼼꼼히 따져보고 보완할 필요가 있고 새로운 규제에도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 선진국은 상권규제 완환 추세
미국은 도시계획과 토지이용에 대한 규제가 유지되고 있고, 과거 종교활동 보장을 위해 일요일 영업규제를 했지만 폐지됐다.
영국은 중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규제가 없고 미국처럼 종교활동 장려와 근로자 휴식권 보호차원에서 280제곱미터 이상 점포에 대해 일요일 영업을 금지했지만 1994년 대형소매점에 대해 일요일 6시간 영업을 허용했다.
이웃 일본은 중소소매점 보호 목적의 대규모 점포 규제가 있었지만, 2000년 철폐했다. 영업시간과 의무휴업일도 지정했지만 현재는 폐지됐다.
프랑스, 독일은 중소소매점 보호를 위한 규제가 존재하지만 우리나라보다 약하고 완화하는 추세다. 프랑스는 중소소매점 보호를 목적으로 대형소매점 사전허가제를 시행했지만 2008년 대형소매점 사전허가 면적을 3백 제곱미터에서 1천 제곱미터로 상향해 규제를 완화했다.
독일도 중소소매점 보호를 목적으로 1200㎡ 이상 점포의 출점 가능 지역을 제한하고 있다. 대형소매점 출점으로 기존 상권의 매출액이 10~20% 감소가 예상될 때 출점을 제한하고 있다.